삼 년이라는 시간
며칠 사이 날이 많이 더워졌다. 며칠 전만 해도 건물 안에 있으면 그런대로 시원한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바깥은 말할 것도 없이 건물 안에도 더위가 느껴진다. 바야흐로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추위보다 더위가 더 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 여름이 와야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이니, 그저 견디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내가 이곳에 온지도 이제 삼 년이 되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택에서 무려 삼 년을 산 것이다. 삼 년이라는 시간은 긴 걸까 짧은 걸까? 처음에 이 방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딱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방과 자그마한 부엌, 그리고 화장실. 나는 이곳에서 삼 년이란 시간동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잤다. 그 평범한 일상들이, 그 평범한 일상들을 해낸 나 자신이 어찌보면 대단한 것 같기도 해서, 신기한 느낌마저 든다. 그 시간동안 나는 이 지역의 여러 곳을 다녔고, 이 지역의 상호와 길들, 풍경들을 제법 눈에 익혔으며, 그래서 마치 고향이 그런 것처럼 어떤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서야 이곳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의 풍경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사람들을 또한 만났고, 이곳이 아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고장이 규모로 보나 인구로 보나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교류했다. 기쁠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으며,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이 나를 좀 더 성숙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니, 이건 내 바람 혹은 기대일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며, 별거 아닌 일에 상처를 잘 받고, 조그마한 일에 화를 잘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건 나 스스로 나름 충격이었는데, 나는 도저히 내가 싫어하는 그런 기질들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처도 자꾸 받으면 익숙해지듯,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점차로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인정하는 것과 실제로 화가 나는 것은 별개 문제지만. 어쨌거나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 보게 되었고, 내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를 내가 고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어쨌든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소회를 밝히는 것은, 이번 주면 발표가 나는 인사 때문이다. 나는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는 직업을 가졌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한다. 나는 저번부터 생각해왔던 전보내신서를 제출했지만, 어디로 갈지 혹은 갈수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가지 못한다면 이곳에 얼마간 더 머물러야 할 것이고, 가게 된다면 이번 달 말까지만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원한 곳으로 갈 수 없다면(어디 그런 곳이 있기나 한걸까?) 아무데나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그리 동요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말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 또한 이 여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어쨌든 이번 주면 결판이 난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방향으로든. 그때까지 나는 내가 해야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