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그친 것은 슬픔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고, 비로소 운 것은 네 슬픔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허튼 약속 없이,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오기는 미래의 슬픔을 이미 겪은 듯한 아내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다가 그쳐가는 걸 지켜봤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편혜영, 《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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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 문장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때로 어떤 문장들은 그에 따른 생각들을 수없이 파생시킨다고. 그것을 공명한다고 하는 걸까? 그러니까 어떤 문장들은, 지금의 내 처지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고, 혹은 그 문장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뭔가를 당장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는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어떤 문장들은, 깜빡이는 등대처럼 어떤 지점을 가리키고 있고, 나는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고.
편혜영의 《홀》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서 나는 뜻밖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처럼 느껴졌는데, 나는 내 삶이 '미스터리'하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스릴러'같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삶이란, 주인공인 오기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오기는 환한 불빛으로 가득한 병원에서 깨어난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여행을 가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왜 차디찬 병원에서,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고, 간병인이 아니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왜 자신의 장모가 자신을 돌보고 있는 걸까. 그는 기억하려 애쓴다. 교통사고가 있었고, 사고가 있기 전 차 안에서 아내와 말다툼을 했고, 아내는 죽었고 자신은 가까스로 살았다. 그는 장모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퇴원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집에서 간병인과 물리치료사 등의 방문을 정기적으로 받게 된다. 스스로는 눈을 깜빡거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의 오기. 모든 권한은 장모에게 있고, 장모는 사위를 돌보며 집안 구석구석을 바꾸기 시작한다. 특히 아내가 정성을 들여 만들어놓은 정원 - 지금은 다 죽어버린 - 을 장모는 갈아엎는다. 연못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정원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 것이다.
한순간에 뒤바뀐 삶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그 구멍 속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남자의 감정에 이입을 하면서 보다가 소설의 중반 이후가 되면 남자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감정적이거나, 막무가내 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것이 아내만의 문제인가? 딱히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는 걸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작가는 오기의 한순간에 바뀐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 삶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들여다본다. 아내의 눈물과, 오기 자신의 눈물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아내가 울음을 그친 것은 슬픔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고, 오기가 비로소 운 것은 아내의 슬픔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그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치는 울음과, 그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비로소 우는 울음이란 어쩌면 자신의 삶에서 결정적 순간이 자신도 모르게 이미 지나갔음을 깨닫는 순간 알게 되는 체념과 후회의 울음일 것이다. 무언가가 이미 지나갔다. 우리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거나, 오기처럼 삶이 한순간에 바뀔만한 사건을 겪고 나서야 우리는 가까스로 무언가를 깨닫고 눈물을 흘릴 뿐.
나는 소설의 저 마지막 문장들에 공명한다고 말했다. 그 문장들이 지금의 내 처지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내가 저 문장들을 읽었을 때, 나는 내 가족에 관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오기가 자신의 아내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기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 흘린 눈물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후회를 하게 될 것인가. 나 역시 '허튼 약속 없이, 섣부른 이해 없이' 너를 슬픔에서 건너오게 하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기' 전에 말이다.
편혜영이라는 작가의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다. 건조하고 냉철하면서도 삶의 이면에 도사린 검은 구멍을, 그 파국의 조짐을 잘 포착한 소설이다. 삶은 그렇게 불쾌하고, 무례하며, 야비하면서도 능청스럽고, 무자비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