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단 한 번의 삶》, 복복서가, 2025.
인생은 일회용으로 주어진다. 그처럼 귀중한 것이 단 하나만 주어진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쾌는 쉽게 처리하기 어렵다.(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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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로 화면을 위로 튕겨 올리는 동안에는 잠시 생의 일회성이라는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지속될까? 인생이 일회용인 것도 힘든데, 그 인생은 애초에 공평치 않게, 아니 최소한의 공평의 시늉조차 없이 주어졌다. 생이 그렇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육신과 정신으로.(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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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에 중요한 무엇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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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처음에는 인물도 낯설고, 상황도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갈등이 고조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무슨 이유로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영원히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무겁게 남아 있는 채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바로 그런 상태로 우리는 닥쳐오는 인생의 무수한 이벤트를 겪어나가야 하고 그리하여 삶은 죽음이 찾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부조리로 남아 있게 된다. 이 부조리에도 끝내 밝혀지지 않은 어떤 비밀들, 생각지도 않은 계기에 누설되고야 마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비밀들까지 더해진다.(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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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 적대를, 다정함보다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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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한 인간의 생인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일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이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 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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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원리' 첫 수업에서 '회계는 경영의 언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문학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모호하다. 이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저것을 말하고, 저것을 말하면서 이것을 말한다. 때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언어이며, 사람에 따라 무한히 다르게 해석된다. 회계가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그래도 된다. 그래서 좋았다.(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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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며, 그걸 받아들인다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부모를 모함해 그 누구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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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의 나는 길에서 마주쳐도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십 대의 나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과 같은 존재라고 애써 믿으며 살아간다. 변하지 않는 어떤 것들을 애써 찾아내, 사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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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만물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했듯,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변화보다 더 어려운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니 이 자연스러운 결과에 굳이 '도발적 사건'을 갖다 붙여 설명할 필요는 없다. 모든 지도에 축척이 있듯이 실제 세계는 이야기의 세계를 초과한다. 다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뿐.(79~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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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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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일깨우는 일과 같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익숙해질 수는 있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다. 요가 수업은 스스로 고통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잠깐 죽었다가, 문득 눈을 뜨고 다시 밖으로 걸어 나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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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주인공은 전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시련은 독자에게 '고구마를 백 개 먹'는 불쾌한 경험을 제공할 뿐이다. 주인공은 시련이나 통과의례 없이도 매우 유능하거나, 미래에서 와서 과거의 일을 훤히 알고 있다. 또는 갈등 자체를 회피하면서 자기만의 성에 고립된 채 무해하게 살아가고 있다.(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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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젊을 때는 확실한 게 거의 없어서 힘들고, 늙어서는 확실한 것밖에 없어서 괴롭다. 확실한 게 거의 없는데도 젊은이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는 채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만 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가능성이 오히려 판단을 어렵게 하는데, 이렇게 내려진 결정들이 모여 확실성만 남아 있는, 더는 아무것도 바꿀 게 없는 미래가 된다. 청춘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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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미래는 불확실의 영역이다(오직 죽음만이 확실한 미래다). 이런 불확실성은 당연히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이 극에 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 너무 없다면 위험할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불안을 감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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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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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쓸모 자체가 없어야 좋다는, 이른바 '무용無用의 용用'을 주창하는 장자가 있다. 장자는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일찍 벌목되므로, 쓸모가 오히려 제 몸에 해를 입힌다고 말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자르지 않는 나무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라 자르지 않았다는 나무꾼의 말에 장자는,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고 제자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고, 그 이유와 방법도 어쩌면 자신만 알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들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 있는지 속속들이 알 도리가 없다. 일부러 2등에 머물거나, 확고한 신념으로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로 존재하는 이들이 내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151~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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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 서바이벌 게임의 세계관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은밀히 믿고 있다. 액정화면 밖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시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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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독자들로부터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를 가르는 기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물론 내 나름의 여러 기준이 있지만 그런 자리에서 다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딱 하나만 말한다. 나쁜 이야기에는 악인과 선인이 정해져 있다고. 예를 들어 특정 인종 또는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 악인이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그런 이야기들. 반대로 좋은 이야기에선 인물이 상황에 따라, 즉, '도덕적 운'에 따라 선인이 될 수도, 악인이 될 수도 있다.(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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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반복되는 꿈이란 더이상 꿈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 다른 생의 흔적일까?(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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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유하다보면 문득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소중한 것의 시작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작은 모르는데 어느새 내가 거기 들어가 있었고, 어느새 살아가고 있고,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