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시월의숲 2026. 2. 28. 15:18

때론 어떤 생각이 말과 행동을 지배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나를 지배한 그 생각은 심장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거나, 풀리지 않는 고민에서 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함으로써 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나를 옥죄고 있는 문제나 고민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당장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함으로써 잠시나마 그 문제를 잊었다면, 그것은 순수히 대화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대화의 대상이 아버지였기 때문일까.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내 생각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변수를 다 생각할 수 없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생각조차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내뱉은 말이 미래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모든 것들이 예측 불가능의 상태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지금껏 살아온 매 순간이 기적이다. 알 수 없는 혼돈의 도가니에서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매번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결과를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살았으니까.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이번 연휴가 괴로울 것이다. 내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 순간 입이 쓸 것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것이다. 그 사이 나는 많이 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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