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읽고 그렇게 써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쓴 책의 문장으로 내 감상문을 쓰는 것. 그의 문장이 내 말을 대신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다시 그것을 읽는 것.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마치 바람이 대신 말하게 하는 것처럼. 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읽고 나서도 그때와 같은 충동을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하면, 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후의 시간 한 줌 속에 있게 되는 거야, 알겠어?(13쪽) 이 책의 주인공인 주아나는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후의 시간 한 줌 속에 있지 않기 위해서. 그녀와 사물들 사이엔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 무언가를 파리처럼 잡고서 살짝 훔쳐보면―아무것도 도망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