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49

단상들

*'월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은' 지나간다. 내 삶의 월요일 하나가. 애정과 증오의 월요일 하나가.(20250428) * 이제 곧 녹색이 파도처럼 쏟아질 것이다. 나는 늘 녹색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연두색이랄까, 옅은 녹색이 아니라 아주 진한 녹색, 검은색에 뿌리를 둔 녹색에 대해서. 어둠으로써의 녹색 혹은 녹색의 어둠, 그 침묵에 대해서. 하지만 나는 늘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뿐이다. 이제 곧 도래할 녹색으로 가득한 침묵의 세계에 대해서.(20250428) * 파도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고, 쏟아지는 것은 폭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쏟아진다는 말이 떠올랐는데, 왜 폭포가 아니라 파도가 생각났을까. 뭐, 아무렴 어떠냐마는.(20240429) * 도서관에서 무료 나눔 한 책을 왕창 가..

입속의검은잎 2025.05.16

단상들

*“오늘부터 일기를 꼭 쓸 것! 규칙적으로 쓸 것! 포기하지 말 것! 설령 아무 구원도 오지 않더라도, 나는 언제라도 구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 프란츠 카프카, 중에서 나는 언제라도 구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 나는 구원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인가? 일기란, 내가 나 자신을 구원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일까. 그러니까 구원이란 내가 나에게 내미는 위로 같은 걸까.(20250416) *전혀 알지 못하는 영화감독이 만든,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의 장면들을 음악과 함께 편집한 영상을 본다.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한 채, 분절되고 파편화된 장면들만이 눈앞에 펼쳐지고, 즉흥극처럼 터져 나오는 배우들의 표정, 몸짓, 손짓, 눈빛들. 그 맥락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입속의검은잎 2025.04.28

단상들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네 결심은 굳고, 나는 그 굳은 결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은 그저 네 결심을 존중한다는 말뿐.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라는 말뿐. 이토록 무기력한, 이토록 안타까운. 무엇을 결정하든 너를 지지한다는 말이 결코 무관심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20250401) * 등산을 했는데 왜 다리가 아니고 어깨가 아픈 걸까?(20250401) * 이상한 세계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일들을, 이상한 기분으로, 이상할 정도로 오래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아무도 없는 집은 천국과 다름없다. 이상하지. 이상한 건 세상인가 나인가?(20211201) 그렇게 이상한 세계에서 나는 또 적응 중이다. 내내 적응만 하다..

입속의검은잎 2025.04.15

단상들

*길을 걷다가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까치의 배를 보았다. 이제 춥다는 말은 유통기한이 지난 말처럼 느껴진다.(20250313)  * 오래전에 '우주의 원더키디'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제목 앞에 연도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분명 2025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2020년이었다. 그러니까 그 만화의 제목은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였던 것이다. 뭔가 크게 예상을 벗어난, 상상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20250315)  * 직장 동료의 문상을 하러 가서 나는 무슨 말을 그리도 지껄였을까. 영정사진 앞에서, 향은 불이 잘 붙지 않아 당황스러웠고, 급격히 떨리는 손으로 겨우 불을 붙인 향이 향로에 잘 꽂히지 않아서 더욱 당황스러웠던. 나는 그곳에서 오래 준비한 죽음과 갑작스러운 ..

입속의검은잎 2025.04.01

단상들

*인사를 하기 전까지는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잘 지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라고 내뱉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이런 게 말의 힘일까. 기대는 없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일에 기대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기대란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걸 말하는데, 나는 일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20250228)  *탄핵을 둘러싸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 내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 여러 인간 군상들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새삼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깊이(하지만 비관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의 존엄함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혐오스러움을 먼저 깨닫고 경악하게 되는 것..

입속의검은잎 2025.03.15

단상들

* 신형철은 진은영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해설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 가졌다'라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이라는 문장은 얼마나 아름다운지.(20250217)  * 당연한 말이겠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온갖 망상과 비극적이고 우울한 생각들이 온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그것이 전혀 치명적이지 않은, 흔하디 흔한 감기 같은 것일지라도. 하지만 아프지 않을 수는 없으니, 몸이 아플 때 정신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20250218)  * 아침에 일어날 때 그날의 피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어제 쌓였던, 하지만..

입속의검은잎 2025.02.28

단상들

* 안경을 바꿨는데, 전에 쓰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을 골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관심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왼쪽 안경알의 도수를 높여서 약간 어지럽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겠지.(20250201)  * 그동안 겨울인데 왜 이렇게 포근하냐고 투덜댔는데, 요즘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칼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추위도 몰아서 오는구나.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님 그냥 그런 건지.(20250206)  *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들과 떠올리려 애쓰는 것들 사이에서.(20250208)  * 점심으로 뭐 먹을 게 있나 싶어 냉장고를 열였더니 설날에 만든 부침개가 남아 있었다. 문득 아직도 응달진 곳에 남아 있는 ..

입속의검은잎 2025.02.15

단상들

* 배수아 작가가 작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다시 본다, 고전2〉 시리즈를 읽고 있다. 한겨울에 곶감 빼먹듯, 아까워서 한 편씩,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읽고 있다.(20250117)  * 산책을 하는데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모를 새 한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내 머리 위로 날아가다가 소나무 위에 앉았다. 하지만 아무리 바라보아도 새는 보이지 않는다. 새는 나를 보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새가 내게 가던 길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머쓱한 기분으로 다시 걸었다.(20250118)  * 베른하르트의 글에는 치명적인 질병이 자주 등장하여 주인공의 정신세계와 언어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아마도 그 자신이 어린 시절 전쟁을 목격했고 결핵과 늑막염을 앓으며 생명을 잃을 뻔했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입속의검은잎 202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