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115

조커: 폴리 아 되

조커 1은 덜컹거리면서도 응축된 감정의 폭발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이번에 나온 조커 2편이라 할 수 있는 '폴리 아 되'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1편에서 인상적으로 보여준 조커의 내면세계를 어떤 식으로 더 보여줄 수 있을까에 관심이 가긴 했다. 하지만 는 조커의 내면을 더 파고들지도 못했고, 조커를 둘러싼 사건의 양상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지도 못했다(할리 퀸이라는 특급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조커와 아서 플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영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아서 플렉이 조커이고 조커가 아서 플렉이지만, 영화는 자꾸 이 둘을 갈라놓으려 한다.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그게 아닐까?). 뮤지컬이라는 형식과 그에 따라 선택된 노래들은 매우 ..

봄날은간다 2024.10.09

공작

파블로 라라인이라고 하는 칠레의 영화감독이 만든 뱀파이어 영화 《공작》을 보았다. 감독 이름이 생소하여 필모를 찾아보니, (아직 보지 못했지만) 《스펜서》와 《재키》의 감독이기도 했다. 어쨌든 뱀파이어 영화라는 것만 알고 보게 된 이 영화는 생각보다 독특했고 때로 우아했다. 흑백 영화이기에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흡혈귀라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역사에 대한 우화(풍자극)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이백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대를 풍미하며 살아온 그가 죽음을 결심하지만 결국 흡혈귀라는 본성에 따라 다시 피와 심장을 갈아 마시며 생명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학살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부유하게 살던 피노체트, 결국 돈 때문에 그를 죽이..

봄날은간다 2024.10.05

베테랑 2

추석 연휴 동안 가족들과 류승완 감독의 를 보았다. 1편도 가족들과 함께 본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나라 형사물 특유의 촌스러움은 있었지만, 소재는 시의적절해 보인다. 영화의 사전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 채(특히 악역) 보아서인지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다만 '정의'와 관련된 묵직한 주제에 비해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악역보다 더욱 불편했던 것은 자칭 '정의구현' 유튜버였다. 돈에 눈이 먼 그들은 거짓을 퍼뜨리고, 선동하고, 어지럽힌다. 나는 그게 무엇보다 무서웠다.

봄날은간다 2024.09.29

"질투는 썩는 것처럼 끔찍한 감정이지. 속을 다 꼬고 뒤집어 놓거든. 그게 얼마나 아픈지 난 알아. 인생을 쉽게 사는 사람을 보면 그런 감정이 느껴지거든. 왜냐면 사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 타이 웨스트 감독, 영화 《펄》 중에서 * 공포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최근에 공포영화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는 날들이지만, 그래서 더욱 공포영화여야만 했다. 영화 속 공포로 현실에서의 내 정체 모를 두려움을 누르고 싶었다.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타이 웨스트 감독의 이라는 영화였다.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가 공포스럽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한 공포는 보다 날이 서고, 감각적이며, 잔인해야만 했는데, 이..

봄날은간다 2024.07.08

파묘

를 보고 왔다. 어째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나올 때마다 영화관에서 보게 된다. 감독 때문에 영화를 보기보다는 영화의 소재나 내용에 흥미가 생겨서 보는 경우가 많은 나로서는 참으로 특별한 일이다. 물론 영화가 마음에 들면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그는 흥미로운 소재들을 적절히 가다듬어 재밌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번에 본 도 그랬다. 얄궂게도, 내심 기대했던 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좀 맥이 빠졌는데,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본 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누가 뭐래도 끝까지 파는' 것이다! 무속 신앙이나 한국적인 오컬트 같은 것에 무지한 나로서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오컬트적인 것들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말이 안 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그런..

봄날은간다 2024.02.25

꿈 없이 빛 없이

'너무 많이 아는 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 알지 못하는 자는 너무 많이 아는 자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 - 이동진, 중에서(『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수록) 문득 책장을 훑어보다가 이동진의 두툼한 ― 어찌 보면 목침 혹은 벽돌로도 보이는 ― 영화평론집을 발견하고 꺼내 펼쳐본다(사놓고도 전혀 읽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무심히 펼쳐진 책에 가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읽는다. 몇 년 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가 언급한,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그 '빛'을 떠올리면서. 처음에는 그 장면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으나, 글을 다 읽고 나서야 조금씩 떠오르던, 그 빛에 대하여. 하지만 그는 이렇게 끝맺는다. 그리고 이건 이 영화의 끝(혹은..

봄날은간다 2024.02.24

도그맨

오랜만의 극장이다. 그동안 극장이라는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새삼스러웠다. 갑자기 왜 영화가 보고 싶어 졌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기 때문일까?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뤽 베송 감독의 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오늘 개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영화를 예매했고, 오랜만에 간 극장의 정중앙에서(마치 영화관을 전세 낸 듯이)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폭력과 학대로 얼룩진 한 남자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가 어쩌다가 수 십, 수 백 마리의 개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 왜 인간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지, 그가 가진 고통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감독은 그의 고통을 ..

봄날은간다 2024.01.24

본지는 꽤(?) 되었는데 지금까지 잊고 있다가 이제야 이 영화를 봤다는 걸 떠올렸다. 영화에 대해서 길게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재밌고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말이다. 일상 속에서 일어날 법한 소재를 가지고 공포심을 유발하는 영화였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었다. 어느 쪽으로든 극단적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은 했으나 그 방향이 현수(이선균)가 아니라 수진(정유미)이었다는 게 조금 의외였달까. 비뚤어진 믿음은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보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무서웠다. 잊고 지나갈 뻔한 영화였는데 불현듯(어떤 무의식이 작용한 걸까?) 생각이 났다. 이렇게라도 블로그에 ..

봄날은간다 202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