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시 리스펙토르 4

배수아 - 조현병 아들, 떠나간 애인…브라질의 ‘여성 카프카’는 고립 속에 이 신비한 소설을 썼다

새로운 종류의 여행법을 나는 독일 베를린 서가의 주인에게서 배웠다. 그것은 죽은 작가와 책을 향해 떠나는 여행, 여행을 통한 읽기이다. 그의 여행이 책이나 작가, 혹은 예술작품으로부터 유발되지 않은 경우란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의 브라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우리는 상파울루 공항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그는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넸다. 내가 거기 있으므로, 거기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했다. 이유는 그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제목의 책이었다. 첫 페이지에는 짧은 작가의 말이 있었다. 그 첫 문장은 이랬다. “이것은 수많은 다른 책들과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이 초대인 동시에 경고라는 ..

모든 별은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는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을 읽고 감상문을 쓴 후, 우연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와 관련한 유튜브를 보았다. 과거 방송작가였다고 밝힌 유튜버는 한강의 오랜 팬이고, 자신의 방송에 한강 작가가 나와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한강 작가의 책을 소개하며 한 대목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역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바람이 분다, 가라』의 한 구절이었다. 모든 별은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는다. 그것이 별의 생리이자 운명이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별로부터 왔다. 별들과 같은 생리와 운명을 배고 태어난 인간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하다가 죽는다. 다른 것은 생애의 길이뿐이다.(17쪽) 그가 읽어주는 저 대목을 들었을 때, 나는 무언가 찌릿한 느낌..

흔해빠진독서 2024.10.20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 그 여자에 대하여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별의 시간』은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자신이 아는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화자(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여자를 잘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는 그 여자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곧 그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그 여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유예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끝은 마치 행성의 폭발처럼 눈부신 잔향을 남긴다. 어쩌면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으리라.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다른 결말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므로. 이 소설의 제목에 대해서 생각한다. '별의 시간'에 대해서. 이 소설에서 등..

흔해빠진독서 2024.10.20

어떤 특정한 응시의 방식

나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길을 잃는다.(358쪽, 「브라질리아」)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니 약간의 현기증이 인다. 길을 잃은 기분이다. 내가 제대로 왔는지 알 수 없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긴 어디인가, 하고. 나는 머리를 살짝 짚은 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표시해 둔 페이지를 다시 펼친다. 그것은 내가 가까스로 그녀를, 이 책을 이해해보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그 문장들 속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자그마한 단서라도(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그 문장들은, 그녀의 글 속에..

흔해빠진독서 202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