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위키드

뮤지컬로 보지 못한 '위키드'를 영화로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보았는데, 뮤지컬 특유의 흥겨움과 멋진 넘버들은 예상했던 바이지만, 인간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글린다도 그렇고 피예로나 보크도. 다소 얄팍할지라도, 오히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특히 파티 장면에서 단체로 춤을 추며 외치던, 먼지 같은 삶이니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추자는(뭐 대충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말이 기억에 남는다. 뮤지컬이라면 응당 그런 요소들을 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때도 없지 않은가!  결국 엘파바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사로 성장하게 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마법은, 너무나도 다른 저 두 사람이..

봄날은간다 2024.11.23

룸 넥스트 도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를 보았다. 내가 사는 곳의 메가박스에서는 오늘 고작 1개 상영관에서 단 두 번 상영을 했다. 놓쳤으면 아마 한참 뒤에 봤거나, 보지 못하고 잊어버렸을 것이다. 영화관은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본다. 오래전에 그의 《그녀에게》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나쁜 교육》을 봤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어렸을 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던 남자가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사람을 찾아가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암튼 영화가 독특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무척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이번 영화는 감독의 첫 번째 영어 영화라고 하는데, 배우가 무려 틸다 스윈튼과 줄리앤 무..

봄날은간다 2024.10.27

조커: 폴리 아 되

조커 1은 덜컹거리면서도 응축된 감정의 폭발이 매력적인 영화였다. 이번에 나온 조커 2편이라 할 수 있는 '폴리 아 되'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1편에서 인상적으로 보여준 조커의 내면세계를 어떤 식으로 더 보여줄 수 있을까에 관심이 가긴 했다. 하지만 는 조커의 내면을 더 파고들지도 못했고, 조커를 둘러싼 사건의 양상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들지도 못했다(할리 퀸이라는 특급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조커와 아서 플렉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 이도저도 아닌 영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아서 플렉이 조커이고 조커가 아서 플렉이지만, 영화는 자꾸 이 둘을 갈라놓으려 한다. 영화의 가장 큰 패착은 그게 아닐까?). 뮤지컬이라는 형식과 그에 따라 선택된 노래들은 매우 ..

봄날은간다 2024.10.09

속삭임 우묵한 정원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그것이 나를 본다.(10쪽)  *그리고 그는 자신을 보는 그것을 쓴다. 바로 자신을 보는 그것이 되어.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속삭임'에 대한 글이자, 그 속삭임의 근원일지 모르는 자신의 '우묵한 정원'에 대한 글이다. 누군가는 동어반복일 뿐이라고 힐난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편지.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발신인 없는 편지'에 대한, 결국 나에게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 대한 글. 나는 이 소설이 마치 이 소설 바로 전에 나왔던 작가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의 소설 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혹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작별들과 순간들 중의 한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그는 《작별..

흔해빠진독서 2024.09.25

김윤아 - 종언

계절이 변하고바람은 먼곳으로 흘러가네요더 남은 말들은흩어져요 바람결에화사하던 꽃들도계절을 따라서 사라지네요다 하지 못했던 사랑이다만 애처러워 울어요스러져가는 마음 나도 어쩔 수 없어그토록 아리던 나를 모두 잊었네사랑했던 나날은 빛바래져가고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새하얀 달빛은새벽에 묻어 숨어버리네요더 남은 얘기는묻어버려요 달빛 속에괴로워 말아요시간이 우리를 달래주겠죠사랑은 모두 다언젠가의 날에 지워져요마음이 있던 자리는 이제 텅 비어더는 흘릴 눈물도 남지않아화사하게 피었던 꽃도 하얀 달빛도달빛 아래에 선 그대의 슬픈 모습도더는 아프지않은 나의 텅 빈 마음도이제 다시는다시는스러져가는 마음 나도 어쩔 수 없어그토록 아리던 나를 모두 잊었네사랑했던 나날은 빛바래져가고두 번 다시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겁..

오후4시의희망 2024.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