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976

너무 쉬운 이야기

아버지는 늘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한다. 임윤찬이나 이세돌을 보며,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바둑을 배웠는데 그 정도도 못 치겠니,라는 등의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그렇게 쉽게,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어느 정도는 허풍이겠지만) 이야기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두 손가락으로 '학교종' 치든, 운동을 위해 5분을 걷든,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라고. 그게 먼저라고. 나는 한강이나 임윤찬, 혹은 이세돌이 될 수 없고, 되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그저 책이 있으면 책을 읽고, 무언가를 쓰고 싶으면 쓰고, 길이 보이면 걷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

어느푸른저녁 2024.10.18

침묵의 뿌리

숲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하다. 새소리,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낙엽 부서지는 소리, 갈대 흔들리는 소리… 숲은 온갖 소리들의 향연으로 쉴 새 없지만 결코 시끄럽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숲의 소리는 침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숲에 어둠이 내리면, 숲은 거대한 하나의 동물이 된다. 숲의 어둠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나를 응시한다. 어둠은 침묵을 더욱 깊게 만들고 소리 또한 선명하게 만든다. 낮의 숲과 밤의 숲이 다르듯, 낮의 소리와 밤의 소리 또한 다르다. 호젓한 숲길을 혼자서 걷는다. 온갖 소리들로 가득한 어둑한 숲길을. 거대한 동물의 긴 호흡을 듣는다. 그 침묵의 뿌리를 만진다. 그 속에 들어갈 수..

어느푸른저녁 2024.10.17

우중(雨中) 산책

雨中 산책.  발도 아직 덜 낫고, 비도 오고 해서 산책은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버지의 전화와, 요즘 들어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보고자 우산을 쓰고 산책을 다녀왔다.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가리러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우중 산책은 처음이던가? 산책은 늘 맑거나 어두울 때 했던 기억만 있으니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걸었던 것 말고 오롯이 산책을 위해 우산을 쓰고 나갔던 기억은 없으니(내 기억은 늘 정확하지 않다). 우중 산책은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마침 덥고 습하던 여름의 기운이 한풀 꺾여서 제법 시원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직 발의 통증이 완벽히 사라지지 않아서 조금 절뚝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비도 오고 저녁 시간이어서 그런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거..

어느푸른저녁 2024.09.21

새벽은 새벽을 기억하고, 낮은 낮을, 밤은 밤을 기억할 뿐

때로 내게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밤이 어제의 밤과 이어져 있고, 오늘의 한낮이 어제의 한낮과 이어져 있다. 나는 아침에서 아침으로, 낮에서 낮으로, 밤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제 각각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새벽은 새벽을 기억하고, 낮은 낮을, 밤은 밤을 기억할 뿐.  그렇게 분산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들)는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보인다. 아침의 나와 한낮의 나, 밤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로써, 각각의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오로지 어젯밤의 내가 오늘 밤의 나에게 흔적을 남기며, 내일 밤의 나에게 손짓할 수 있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이 오지만, 작년의 봄과 올해의 봄, 내년의 봄이 이어지고, 여름과 여름이, 가을과 가을이, 겨울과 겨울이 이어진..

어느푸른저녁 2024.09.21

정류장에서

오랜만에 서울 출장을 다녀왔다. 서울은 내게 아무런 연고가 없는, 그저 먼 곳의 상징적인 도시일 뿐. 언제 서울에 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갔었는지도. 그런 서울에 출장을 가야 한다고 들었을 때 나는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의아했다. 그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낯선 대도시(마치 외국을 방문하듯)에 가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불안감? 무엇으로 인한? 그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오랜만에 본 서울은 여전히 모든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람도, 건물도, 소리도, 심지어 공허마저도. 과잉의 도시.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에 왔다. 버스를 기다리며 동서울버스터미널 2층에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아직도 이곳은 오래된..

어느푸른저녁 2024.09.18

오래된 묘지

왜 오래된 묘지일수록 높고 험한 산에 있는지 아니?  아버지가 물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아버지는 말했다. 벌초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면서 세속의 모든 번뇌를 잊으라는 뜻이야. 정말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 벌초란,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당신 부모에 대한 속죄처럼 보였다. 본인의 몸도 성치 않음에도 매번 벌초는 직접 하려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쨌거나 번뇌는 잘 모르겠고, 예초기를 메고, 낫을 들고, 산을 오르니 확실히 잡생각은 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생각, 육체의 힘듦에만 집중하게 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잊으라는 말이 그런 뜻이라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일 년 만에 오른 조상들의 묘는 이제 땅과 하나가 되려 하고 있었다. 내 가슴팍까지 오는 풀들은 어떤 위협 혹은 경고처럼..

어느푸른저녁 2024.09.07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

매혹에 관해서, 귀는 음악을 가지고 있다. 눈은 회화를 가진다. 죽음은 과거를 가진다. 사랑은 타인의 벌거벗은 육체를 가진다.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중에서) * 자신이 쓴 글을 가장 많이 읽어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고, 어떤 소설가는 말했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나는 소설가도 뭣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글을 가장 많이, 가장 즉흥적으로, 우연하게 읽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읽는가?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문득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소위 '꽂힌다.' 그런데 그렇게 꽂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작용들이 합쳐져서 발생한다. 어떤 사건, 사소한 대화, 우연한 발견, 뉴스와 여러 미디어가 ..

어느푸른저녁 2024.08.28

당신의 인생 영화는 무엇인가요?

그는 내게 인생 영화가 무어냐고 물었다.  나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치 지금껏 단 하나의 영화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아직 인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인생 영화란 말인가? 그는 내 이런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아, 그러니까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질문을 되돌려 주었다. "당신은 인생 영화가 있나요?" 내가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라고 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이 크게 떠졌다.   장국영이 나오는 그 영화 말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언젠가는 보리라 생각했지만 아직 보지 못한, 그리하여 기억에서 멀어져 버린 그 영화가 다시금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혹은 내가 그 영화 쪽으로 조금씩..

어느푸른저녁 2024.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