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정말이지 나는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려는 것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왜 그다지도 어려웠던가?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오래전에 저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그 문장이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로, 당연한 문제로 내게 새겨졌다. 나의 내부에서 스스로 나오려는 것을 사는 일, 그러니까 진정한 '나'로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시 어렸던 나는 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굴로 살아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아니, 온몸으로 직감했다. 저 문장은 내 생의 화두가 될 것임을. 내 온 삶을 관통하는 문장이 될 것임을.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나는 저 문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

흔해빠진독서 2024.05.26

거기에 있으면서 거기에 없는

'쉼 없이 여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어딘가에 있다. 이 말은 당신 자신에게도 적용되므로 당신은 늘 부재중이며, 다른 사람들, 친구들에게도 그렇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으로 보면 당신은 '다른 어딘가'에 있기에 어딘가에는 '부재중'이지만, 또한 어딘가에는 늘 '있기' 때문인데, 요컨대 당신 자신에게 말이다.' '당신은 거기에 있으면서 거기에 없다. 그것이 내가 모로코를 두 번째로 여행한 방식이다.'(세스 노터봄, 『유목민 호텔』 중에서) * 쉼 없이 여행하는 자가 있다. 그는 언제나 다른 어딘가에 있다. 그는 늘 부재중이지만 또한 어딘가에는 늘 있는데, 바로 그 자신에게 그렇다. 그러니까 그는 쉼 없이,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도 자신 안에는 늘 있으므로 그는 '타인이 관할하는 세계를 홀로 여행'하는 ..

흔해빠진독서 2023.03.26

구부전(舅婦戰)

듀나의 『구부전』을 읽었다. 나는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소위 SF 장르물을 거의 읽지 않는데, 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공상과학이 다루는 여러 소재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듀나의 소설은 흥미가 생겨서 찾아 읽곤 한다. 지금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태평양 횡단 특급』을 읽었고, 소설은 아니지만 영화와 관련된 에세이인 『가능한 꿈의 공간들』도 좋았다. 때때로 에 올라온 영화 리뷰들도 즐겨 읽는다. 고정되고 편협한 관념을 뒤흔드는 상상력과 비타협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당연하게도 나는 그것들을 읽거나 보지 못했으므로)..

흔해빠진독서 2022.03.01

미드소마

의 아리 에스터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인 를 보았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보게 되었는데, 만약 못 보고 지나갔다면, 상당히 독특한 공포영화 한 편을 놓칠 뻔했다. 우연찮게도 최근에 본 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플로렌스 퓨가 주인공 '대니'역을 맡았다. 감독의 전작인 은 상당히 '어둡고' 독특하면서도 섬뜩한 공포영화였다면, 는 상당히 '환하고(?)' 독특하면서도 섬뜩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스웨덴의 외딴 마을에 종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에 대니와 친구들이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북유럽 특유의 백야와 이단적인 종교의식이 이방인들의 눈에는 낯설게만 보이는데, 그것이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

봄날은간다 202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