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 창비, 2021.

시월의숲 2021. 5. 19. 23:25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나는 그 별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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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인간을 알게 되었지. 얼마나 나약하고 또 얼마나 강한지를 말이야. 한없이 선하고 끝간 데 없이 폭력적이지.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불행과 대치하며 한생을 살다 간 사람들은 자취를 남기네. 모진 상황들을 견뎌낸, 흔적 말이야. 내가 책을 읽는 일은 그 흔적 찾기였는지도 모르겠어.(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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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깊이 그 생각에 빠져든다. 잊으려고 애쓰면 더욱 잊히지 않듯이. 생각을 하지 말자, 해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더 생각할 게 없을 때까지 생각을 하는 수밖에 길이 없다. 어떤 일이든 잊힐 때가 되어야 잊히는 것과 마찬가지로.(3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