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김선오, 《시차 노트》, 문학동네, 2023.

시월의숲 2025. 7. 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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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노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제목이다. 두 개의 단어 사이를 오가거나 두 개의 단어를 발판 삼아 멀리 가는 글쓰기. 두 단어 사이의 영향 관계를 가늠하거나 생성하기.(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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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비가 온다고 적은 이유는 "비가 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았다. 오늘은 무척 맑은 날이었다.(13쪽, '비-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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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 오는 날씨를 가끔은 좋아하고 가끔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비를 좋아할 수 있거나 없거나, 그런 것과 무관하게 비는 온다.(14쪽, '비-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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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는 글쓰기가 자신의 직업이 아니라 인생이라고 말했다지만, 글의 입장에서 나의 삶은 글의 숱한 직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글은 평생에 걸쳐 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글은 나로서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비가 온다고 쓰게 함으로써 글은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글에게 그런 입장이 있다면, 어쩐지 조금 좋다. 내가 글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글이 주체가 되고 내가 그저 글의 온전한 수단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18~19쪽, '비-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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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우려 노력하지 않는 비유만이 갖는 아름다움.(27쪽, '피아노-비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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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결정하지 않고 그것은 내가 너를 결정하지 않는 방식과 같다. 우리를 결정한 계절이 우리를 에워쌀 때 우리는 계절 속에 놓이게 된다. 계절은 강한 손으로 세계에 우리를 고정하는 압정을 박는다. 그러므로 계절의 변화는 옅은 통증과 함께 온다. 익숙한 온도를 잃어버린 피부는 가벼운 통증을 느끼며 추위가 사라지는구나, 더위가 사라지는구나 알게 된다. 살아 있음은 통증을 동반하고 통증은 나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빛이 그 아픔의 표면을 어루만진다. 바뀐 계절마다 다른 질감과 무게의 빛이 살에 얹힌다.(39~40쪽, '봄-터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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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그림자를 만들 때 그림자도 빛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아 있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죽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처럼. 삶이 죽음을 만들듯 죽음은 삶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40쪽, '봄-터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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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봄에 있다. 봄은 우리로써 기념된다. 우리의 사진으로써, 우리의 웃음으로써, 우리의 걸음으로써 우리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봄의 일부가 되듯이. 우리는 이렇게 봄에 참여한다. 큰크리트 벽 위로 길게 늘어진 개나리 덤불의 약한 흔들림처럼 봄의 미세한 움직임이 된다.(43쪽, '봄-터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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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멈춘다. 백사장은 지구의 맨살이므로 맨발로 밟는 편이 예의인 것 같다. 바다는 움직이는 피부처럼 밀려온다.(54쪽, '바다-리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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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각을 배제한, 장면과 소리로만 경험되는 바다라면 이제 되었다고. 거대한 손에 의해 던져진 듯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맨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수영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럽다고.(54~55쪽, '바다-리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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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곧잘 하는 일들이 너에게는 언제나 쉽지 않다는 감각. 언제나 실체적인 물보다 추상적인 하늘 쪽에 몸을 더 많이 내밀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는 예감. 바다 앞에서 너의 리듬은 끊어졌다.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해갈하기 위해 도착한 장소에서 매번 다른 종류의 그리움과 일정 분량의 슬픔을 느껴야 했다.(58쪽, '바다-리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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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라지고 너만 남은 기쁨의 가장자리에서 이 글은 쓰인다.(64쪽, '바다-리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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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은 살아 있나. 죽어 있다기에 돌 속에는 너무 많은 기억이 있다. 삶과 죽음이 모두 함유되어 있다. 다음 세기의 돌을 떠올릴 때 그 돌이 이번 세기의 돌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킨다.(89쪽, '돌-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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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누더기, 그것을 걸치고 나는 어디까지 왔나? 합리성에 선행하는 허술함은 불안의 형성과 해소 중 어느 쪽에 더 기여하는가? 우리가 우리로서 기억의 거처인 것이 아니라 기억이 우리의 구멍 난 거처가 된다.(98쪽, '기억-(기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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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곧잘 만들어졌다. 떠나온 곳과 향하는 곳이 있기만 하다면······ 이동과 여행 사이의 위계는 세상의 수없는 위계들에 비하면 다소 쉽게 무화되는 희미한 것이었다. 향하는 곳이 편의점이든 할머니 집이든 콩코르드광장이든 살아 있음이 두 발을 이끌어 도착하게 되는 곳, 그곳으로 가는 동안이 여행일 수 있었다.(105쪽, '잠-이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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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줄거리나 장면은 읽을 수 없는 말로 이루어진 책의 내용처럼 노력해도 가질 수 없었다. 늦은 오후 고개를 든 R의 이마에는 빨갛게 눌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152~153쪽, '도서관-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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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창백한 살과 내장이 상상의 거처가 되면 좀 어떤가 싶다. 공허해도 얼굴이 있다고 믿거나 공허에 얼굴을 만들어주는 편이 언제나 우리 마음에 낫기 때문이다.(174쪽, '유령-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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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 타는 냄새. 숯 타는 냄새는 낯이 익다. 숯은 나무다. 숯 타는 냄새는 나무 타는 냄새다. "나무는 숯의 기억이다"라고 적어본다. 거짓말이다. 숯은 나무의 다른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른 상태를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나. 숯은 여전히 숯인 나무다.(177쪽, '시-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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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자체가 공간적 인식을 환기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때 폐쇄적인 공간감과 개방적인 공간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어요.(184쪽, '시-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