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 붕괴는 대부분은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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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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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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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붕괴에 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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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대중선동가는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며, 때로 그들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경고신호를 인식하고, 이러한 인물들이 권력의 중앙 무대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 물론 극단주의자의 호소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 엘리트 집단, 특히 정당이 사회적 거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당은 민주주의의 문지기인 셈이다.(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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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독재자와 민주주의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비판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독재자는 야당과 언론 및 시민사회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권력을 이용하여 처벌한다.(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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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포기',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에게 권력을 넘기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 사회학자 이반 에르마코프가 '이념적 공모'라고 부른 개념으로, 이는 집단적 포기를 택한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해당한다.(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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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발의한 법안은 의회 승인을 얻지 못하거나, 사법부의 반대로 무산될 수 있다. 모든 정치인은 이러한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은 제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비판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아웃사이더들에게, 특히 선동 성향이 강한 독재자들에게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속성은 견디기 힘든 속박이다. 견제와 균형은 그들에게 멍에와 같다. 법안을 발의할 때마다 당 대표와 오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후지모리 대통령처럼 잠재적 독재자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일상적인 정치 과정에서 인내심 부족을 드러낸다. 그리고 후지모리처럼 어떻게든 그러한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다.(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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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매수하거나 무력화하고, 게임의 법칙을 바꿈으로써 권력 세계에서 중요하고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한다. 그들의 시도는 언제나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전제주의로의 흐름이 항상 경고등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민주주의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그 변화가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도 말이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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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을 꼽자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 수 있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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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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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생존에 중요한 두 번째 규범은 우리가 '제도적 자제'라 부르는 개념이다.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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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짓밟는다.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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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민족을 기반으로 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는 없었다. 그것은 이제 미국 사회의 도전 과제로 남았다. 그리고 동시에 기회로 남았다. 미국 국민이 그 과제를 완수한다면 미국은 역사상 진정으로 특별한 나라가 될 것이다.(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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