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나의힘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시월의숲 2005. 12. 17. 11:10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 *

 

 

 

가끔 시심(詩心)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어떤 학자는 그것을 생태적 관점으로 해석하기도 하던데, 처음엔 그 해석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詩란 언어로 구성된 지극히 인간적인 산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둘은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곧 생태적이 된다는 말과 같은 뜻인 것이다. 시의 마음이 곧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고, 자연에 속한 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에서 보이는 의인관적인 세계관은 세상을 인간중심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내 안에 받아들여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뜻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위의 시를 읽어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내가 그 사람과 같은 처지에 처해 보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그 사람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갔다 올 수 있나? 심지어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이해는 오해의 전부이다"라고 했지 않은가! 이해의 속성은 이렇듯 자기중심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또한 상대에게 걸어들어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보통사람들보다 사물을 더욱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도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인간을, 자연을 이해한다. 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살얼음을 깐 강이라니! 詩心이란 이렇듯 누군가의 무언가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심정이며, 그것은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詩心을 가지고 있다. 내리는 눈을 볼 때, 붉은 석양을 바라 볼 때,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바라볼때의 마음을 생각해보라. 다만 그것을 모든 사물들에게로 확장시켜 생각하지 못할 뿐. 각자가 모두 자신안의 詩心을 깨닫고 詩心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워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