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광막한 바다

시월의숲 2009. 7. 5. 09:16

울진에서 포항 간 버스를 타면 얼마간 동해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바다를 옆에 끼고 난 해안도로 때문이다. 거의 이십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내륙지방에서 살아온 내가 발령을 받아 울진으로 오고 난 후, 포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종종 이 바다를 보곤 했는데, 볼 때마다 무척이나 신선하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바다와, 시퍼런 바닷물과 검은 바위에 부딪히며 철썩거리는 파도소리. 이 모든 것들이, (과장을 좀 하자면)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다의 마력일까.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가끔 바다를 보는 것은 좋지만 바닷가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왜냐고 물어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출렁이는 물살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곳에 빨려드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바다가 자꾸 그들을 부르기 때문일까. 그 부름에 답하지 못하고 바다를 쳐다만 보다가 차마 죽지는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것일까. 나도 가끔 바다를 볼 때마다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는, 처음에는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과 상쾌함을 주지만, 나중에는 미묘한 답답함과 왜소함, 혹은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바닷가에 가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무서운 마력에 빨려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파도와 달에 관해서 쓴, 아주 서정적인 시가 생각난다. 함민복이었던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시의 어떤 구절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저 그런 시가 있었다는, 그것이 무척이나 아련하고 그리움에 잠기기 하는 시였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이처럼 바다는 인간에게 아련하고 그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광막함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곳은 우리가 맨 처음 탄생했을지도 모를, 그리고 맨 나중에 돌아가야 할지도 모를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  (0) 2009.07.14
결혼 '안'하는 남자  (0) 2009.07.09
초연한 눈빛을 가진 사람  (0) 2009.07.02
무제  (0) 2009.06.30
슬퍼지려 하기 전에  (0) 2009.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