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결혼 '안'하는 남자

시월의숲 2009. 7. 9. 21:32

 방금 '결혼 안하는 남자'라는 제목의 KBS <30분 다큐>를 보았다. 결혼이 의무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 '안'하는 남자란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였을 것이다. 프로그램에는 결혼 적령기가 되었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의사이거나 포토그래퍼 혹은 편집장으로써 주로 전문적인 직종에 종사하며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도 되는 것 혹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비교적 풍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찾아 하는 그들은, 연애보다 오히려 취미생활에 더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은 누군가(주로 부모님이겠지만)의 권유로 선이라도 볼라치면, 그 어색한 분위기와 남자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으로 둘러처진 만남의 자리가 무엇보다도 싫고 절로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니, 그들은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그것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인 셈이었다. 반드시 해야한다는 암묵적이고도 억압적인 강요로서의 결혼에 의문과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 말이다.

 

결혼 적령기(그런게 있다면)가 되었음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남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근거없는 호기심과 어이없는 비난, 오만한 연민이 자리하고 있다. 도대체, 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러한 부당한 심판이 내려져야 하는가? 그건 집단따돌림과도 같은 행위이다. 물론 자기가 스스로 자신이 부족하여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뭇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스스로가 다수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그러한 비난도 당연하다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결혼을 '안'하는 남자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30분 다큐>의 결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결혼 안하는 남자들에 대해서 변호하는 듯하다가 결국 그들도 남들과 다를 바 없으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좀 늦게 나타나는 것일뿐,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결혼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안하는 남자들은 로맨티스트에다 지독한 현실주의자라나. 나는 그 부분에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결혼을 안 하는 이유가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이라니! 프로그램을 만든 피디 역시 결혼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단순한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가?

 

다수의 고정관념은 그만큼 견고하고 일방적이며 무자비하다. 그렇게 결론을 낼 것이었다면 부제를 결혼 '안'하는 남자가 아니라 결혼 '못'하는 남자, 아니 결혼을 '늦게' 하는 남자로 바꾸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무심코 죽인 것들  (0) 2009.07.14
이사  (0) 2009.07.14
광막한 바다  (0) 2009.07.05
초연한 눈빛을 가진 사람  (0) 2009.07.02
무제  (0) 2009.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