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지넷 윈터슨,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민음사, 2009.

시월의숲 2011. 5. 6. 22:48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어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 생각은 알고 있지만 머릿속의 단어들이 물속에서 들리는 목소리 같다. 단어들은 뒤틀린다. 이 단어들이 수면을 치고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세심한 작업이다. 은행 강도가 금고 문을 열기 위해 희미하게 들리는 찰칵 소리를 듣고 또 듣는 심정이어야 한다.(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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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가지 이론이 있다. 당신이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뒤에 남은 당신의 일부가 당신이 누릴 수도 있었을 다른 삶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여 그의 일부가 자신의 몸 외부에서 새로이 자신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환상이 아니다. 도예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이를 자기로 만들고, 자기는 도예가를 넘어서서 자신만의 별개의 삶으로 존재한다. 도예가는 자신의 사고를 보여 주기 위해 물리적 실체를 이용한다. 만약 내가 나의 사고를 보여 주기 위해 형이상학적 실체를 이용한다면, 나는 한번에 여러 곳에 존재하여 수많은 것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도예가와 그의 자기가 다른 장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나는 이곳에 결코 있지 않았으나 나의 모든 부분들이 내가 한, 그리고 하지 않은 모든 선택들과 함께 흐르며 한순간 서로 스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내가 여전히 북부에 사는 전도사이면서 동시에 달아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잠시 동안 이 두 자아가 융합되었을 것이다. 시간에 있어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후퇴하지도 않았다. 시간을 가로질러 나였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간 것이다.(280~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