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기억하는 건, 그런 것들

시월의숲 2012. 11. 5. 21:59

1박 2일에 걸쳐 군산, 부안, 고창을 다녀왔다. 아니, 새만금과 채석강, 내소사, 곰소염전, 선운사를 다녀왔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생전 처음(이런 말은 되도록 쓰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처음은 처음이니까) 전라북도를, 서해안을 보고 왔다. 다녀온 곳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기록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뭐, 가계부를 쓰는  것이나 카드결재 영수증 혹은 영화티켓 같은 것을 남겨두는 일이 전혀 의미없는 일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사실 나는 영화티켓 같은 것은 버리지 않는 편이다) 어떤 곳에 다녀온 후 무언가를 남겨놓는 일에 지나친 의무감을 느낀다면, 그래서 그것이 깃털만큼이라도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중에는 되도록 사진을 찍지 않으려 하고(찍어도 최소한으로 찍으려 하고),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에 스스로 압박을 주지 않으려 한다. 한마디로 마음 내키는대로 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누군가 나에게 정해준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그것이 나에게 준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어서 나 스스로 만든 나만의 규칙인 셈이다. 이건 사진을 찍는 것과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거나(그럴리가 있겠는가!) 소용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깊은 인상과 감동을 잡아두는데(한마디로 '어떤 시간'을 잡아두는데) 충분히 유용하고 효과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가 나무나 돌에게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고, 단풍이 우거진 계곡의 물그림자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고, 밀물과 썰물, 달의 관계를 생각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내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마치 수업시간에 필기에 온 신경을 쓰는 바람에 정작 선생님이 하는 말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처럼.

 

물론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에서의 '일'일 것이다. 무언가를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직업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한다는 건, 우리가 그 일에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게다. 그리고 의무감은 우리에게서 순수한 즐거움을 빼앗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추어일때와 프로일때의 마음가짐의 차이는 아마도 그 지점에서 갈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에 나는 그것을 꽤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는 어려운 일인가 하고. 하지만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의무감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정한 프로는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감이라는 압박을 어느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가 옆으로 새버렸다. 사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채석강에서 보았던 돌들과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다와 이상스레 쓸쓸함이 묻어나던 곰소염전의 소금창고들과 선운사 가는 길의 단풍나무를 비추던 눈부신 햇살에 대해서. 여행을 다녀온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그것을 이렇게 언어로 기록한다는 건 얼마나 무미건조한(물론 내 능력탓이 제일 크겠지만) 일인가. 내가 그곳에서 느꼈던 것들, 내 피부에 와 닿던 바닷바람과 선운사 가는 길 단풍나무잎 사이로 비치던 눈부신 햇살과 눈이 시리도록 파랗던 하늘은 이미 내 앞에 없는데. 그것은 내가 찍은 몇 장 안되는 사진 속에도 없고, 내가 쓰고 있는 이 글 속에도 없다. 그것은 온전히 지난 '시간' 속의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또한 짧은 시간이나마 그곳에 있었고, 그곳의 바람과 공기를 마셨으며 그곳의 햇살을 피부로 느꼈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어느 한 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내 기억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문득문득 떠올라 일상에 지친 나를 조용히 위로해 줄 것이다. 미묘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조금 뜬금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와의 조응, 그것의 미묘한 맞물림, 작지만 확실한 행복 같은 것도 대충 그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