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기야 디어라

시월의숲 2012. 10. 10. 20:51

1.

아무래도 가을 탓인 것 같다. 요즘들어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불쌍하게 느껴지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드는 것은. 거울 앞에 서면 자꾸만 메말라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보여 오래 내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감기는 나은듯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콧물과 재채기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다. 가을에 적응하기는커녕 가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 갑자기 겨울이 오면 나는 어떻하나. 이 모든 것을 가을 탓으로만 돌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일까? 알 수 없는 피곤함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낙엽이 지기 시작한 거리를 천천히 걷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마음은 가을이고 싶은데 몸은 아직 여름에 머물고 있는가?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2.

음악을 자꾸 듣고 싶어지는 것도 아마 가을 탓이리라. 몸의 피곤함, 알 수 없는 자기연민과는 별개로(아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음악이 듣고 자꾸만 듣고 싶다. 어제 이상은 콘서트에서 느꼈던 깊은 감동도 그런 내 요즘의 심리상태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 가을과 딱맞는 목소리를 가진 그. 그의 노래들. 그의 목소리는 가을 낙엽이 바람에 조용히 날리는 소리를 닮았다. 까슬까슬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노래 또한 마찬가지이다. 콘서트에서 들려준 노래들(실제로 '어기야 디어라'를 들었다니!)이 모두 다 좋았지만, 특히 '새'라는 노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동양적인 서정성으로 가득찬 노래였다. 하지만 'soulmate'나 '공무도하가', '삼도천'같은 노래들을 들을 수 없어서 좀 아쉬웠다.  기타와 키보드만으로 구성된, 어쿠스틱한 콘서트였지만 목소리와 어우러지니 무척이나 풍성한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 반이나 되는 공연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콘서트장을 나오면서 한 번 더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가 직접 노래했듯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임을 믿기에.

 

 

3.

그래, 어쩌면 그러한 것들,

노래나 낙엽, 바람, 하늘, 거리 같은 것들

나를 회의와 자기연민에 빠뜨렸던 바로 그것들이

나를 자기연민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할 수 있을지도

그래,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