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참새는 어쩌다 내 베란다에 들어오게 되었나

시월의숲 2012. 11. 8. 22:09

아침에 잠에서 설핏 깨었을 때, 베란다에서 무언가 푸드득푸드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줄 알았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내 방 창문 베란다에서 나는 소리였다. 내 방은 3층이고, 그래서 당연히 베란다로 누군가 들어올리가 없으므로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소린가 싶어서 커텐을 걷고 문을 열어보니 참새 한 마리가 베란다에 들어와 이리저리 제 몸을 부딪히며 날고 있었다. 분명 창문을 열어놓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저 참새가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의아했다. 참새도 많이 당황했는지 제 몸이 아픈 것도 모르고 창문과 벽에 제 몸을 들이박으며 밖으로 날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참새가 더이상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창문께로 다가가 신속하게 창문을 열었다. 참새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창 밖으로 날아가버렸다. 참새가 어떻게 내 베란다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베란다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오른쪽 창문 아래에 작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정말이지 참새만 들어올 수 있을만큼의 크기였다. 하지만 들어왔다가 나갈 줄은 몰랐던 참새는 한동안 작은 공간에 갇혀 있었겠지. 아침에 내가 눈을 뜬 건 참새의 날개짓 때문이었던가? 참새는 자신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내 방 베란다에 들어왔고, 나의 아침을 깨웠다. 그건 혹시 누군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에 나오는 '밑줄 긋는 남자'가 남긴 문장의 의미처럼. 혹은 한강의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게 만든 '새'의 존재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그러고 보면 아침에 참새가 내게 일으킨 파장은 실로 감상적인 것이었다. 아직도 내 속에는 오래전 일요일 아침만 되면 괜시리 마음 설레하던 아이가 들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더이상 성장하기를 멈춘, 몽상에 곧잘 빠지고 유난히 수줍음이 많던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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