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무지의 재능

시월의숲 2014. 9. 10. 15:49

삶이 우리에게 베푼 것 중에 우리가 신들에게―삶 자체를 준 것에 대한 감사와는 별도로―특히 감사를 올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무지의 재능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르고 우리들 서로에 대해서도 모른다. 인간의 영혼은 어둡고 미끈거리는 심연이며, 세계의 표면에서는 결코 길어 올릴 수 없는 우물이다. 자신을 정말로 알게 되면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무지의 결과이며 정신의 혈액인 허영이 없다면 우리 영혼은 빈혈로 죽어갈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도리어 다행이다. 누구든지 타인을 알게 된다면, 그 타인이 누구든지, 어머니든 아내든 혹은 자식이든 상관없이, 타인 안에서 형이상학적 숙적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 것이다.(442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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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서로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인가. 우리가 사사건건 서로를 알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영원히 알 수 없을 타인을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에 우리는 알 수 없는 번민과 자책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우리가 왜 고통을 당하는지, 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답답함과 증오 속에서 서로를 저주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무지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하고, 그러므로 당연히 타인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는, 그 자명한 진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프고, 앞으로도 아플 것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그것은 오히려 소통의 가능성을 열고, 타인과 가까워지며,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그래야 진정으로 공감과 유대를 하며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아마도 무척 나이가 어리거나, 반대로 나이가 아주 많거나, 이상주의자이거나 혹은 몽상가가 아닌가?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믿는 당신은 이미 그 자체로 폭력적이다. 그 누구도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러한 이해는 지극히 이기적이며, 주관적이고, 편협할 뿐. 그것은 오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르고 서로에 대해서도 모른다. 누군가를 안다고 느끼는 건 착각일 뿐이다. 우리는 거대한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무지함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 안에서 형이상학적인 숙적의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하지 않으려면.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지의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와 동시에 그 재능을 발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그렇게 이기적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한없이 슬픈 존재들이기도 하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또한 타인으로부터 알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페소아는 우리가 '무지의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 안의 깊은 우물을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에, 즐겁게 서로 이해하면서(혹은 이해하는 척하면서) 계속해서 원무를 출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이해, 내가 결코 알 수 없을 상대방의 우물을 자기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타인에게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가면을 쓰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알 수 없었으리라. 또한, 가면을 벗고 맨얼굴로 대지 위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돌덩어리, 즉 모욕과 굴종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우리가 살아낸 삶은 흐르는 오해다.' 라고 그는 썼다. 진실이 있다면 오로지 저 문장 안에 있음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