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고독

시월의숲 2017. 4. 23. 17:58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때론 고독감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위안을 주기도 했다. 익명의 사람들 틈에서 나역시 익명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들은 모두 다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다 똑같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기에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같아 보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울에 갈 일은 거의 없었는데, 모처럼 친구(라고 해야할까?)와 뮤지컬을 보러 서울나들이를 했다. 지하철에서 지나친 사람들과 공연장에서의 사람들, 쇼핑몰에 가득한 사람들이 이곳이 서울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평소 그처럼 많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으니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지나가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이니까. 어쨌든 서울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자극을 안겨주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 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다.


도시에 강한 사람과 자연에 강한 사람, 도시친화적인 사람과 자연친화적인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도시에 강한 사람들은 다른 말로 인간들 사이에서 더 부대끼고 경쟁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일테고, 자연에 강한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부대끼고, 자연과 경쟁하며,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부질없는 물음이겠지만, 둘 중 누가 더 강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인간은 인간을 떠나 살아갈 수 없다고 할 때,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좀 더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과의 경쟁에서 떨어져나와 어쩔 수 없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달라지니까. 하지만 그 '강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내가 최초에 들었던 의문이 우스워 웃음이 났다. 나는 어쩌면 대도시에의 인간들이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결국 내면은 황폐하고 나약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느낀 고독이라는 것의 색채가 조금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도시에서의 인간들은 자연에서의 인간들과 다르게 특수한 능력을 타고난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옷깃 한 번 스치지 않고, 스텝 한 번 꼬이지 않고 절묘하게, 마치 물고기가 유영하듯 사람들 사이를 잘도 걸어다닌다. 또 그들은 밥을 먹을 때, 각자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지킨채(심지어 이어폰을 낀 채) 앞에 함께 앉아 있는 일행이 마치 남이라도 되는듯 신경쓰지 않고 밥을 먹는다(물론 이건 대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하철에서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어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의 그들은 마치 다른 종족처럼 우아하고 세련되며 서로가 서로에게 뽐내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렇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서 고독은 번쩍이는 대리석 석상과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매끈한 바닥과 함께 존재하고 있었고, 모두들 마치 고독하지 않으려고 애쓰려는듯 미친듯이 쇼핑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손과 어깨를 맞잡고 다녔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무엇에 쫓기듯 절실해 보였지만 그건 어쩌면 나 자신의 심정이 그렇기 때문에 느끼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그 속에 산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병들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뮤지컬은 좋았다. 예전에 본 <드림걸즈>라는 영화의 뮤지컬 버전이었다. 원어민 배우들이 영어로 하는 내한 공연이었다. 영화에서는 디나(비욘세 역)가 주인공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에피가 주인공처럼 보였다. 흑인들 특유의 소울이 진하게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특히 지미역의 배우는 다른 서양인에 비해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무척이나 잘해서 깜짝 놀랐다. 에피역을 맡은 배우 역시 풍부한 성량으로 극의 주요 넘버들을 잘 소화했다(영화에 비해 못하다고 느낀 것은 영화 속 에피 역의 제니퍼 허드슨의 노래가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역시 뮤지컬은 직접 보고 들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이렇듯 화려한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우리가 느끼는 알 수 없는 공허는 더 커지는 것일지도. 우리 모두는 그 화려함을 감당할 능력이 턱없이 부족할테니까. 고로 대리석은 더 차갑게, 벽돌은 더욱 견고하게, 상들리에는 더욱 화려하게, 건물은 더욱 높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그 화려함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란걸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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