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뿌리와 생명으로 자신의 장소와 연결되어 있는

시월의숲 2017. 4. 1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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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느낌, 한 때 고향을 가졌었다는, 그 느낌! 한때 나는 세상의 어느 작은 장소에 있는 모든 집들과 모든 창들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한때 나는 이 세상의 어느 특정 장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뿌리와 생명으로 자신의 장소와 연결되어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66쪽, 헤르만 헤세,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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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에 연둣빛 잎사귀가 보였다. 나는 무엇엔가 이끌리듯 고향집에서 나와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수풀 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색색의 다양한 벌과 이름모를 벌레들이 저마다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언가 움트는 느낌, 이미 무언가 시작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봄이던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웅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벌이 웅웅거리는 것처럼. 벌레의 웅성거림과 나무의 수런거림. 어쩌면 봄은 소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 소리를 바람이 실어나른다. 나는 자연의 피상적인 모습에서 안도와 위로를 느끼지만, 실상 그 속으로 조금만 걸어들어간다면, 그곳은 아마도 전쟁터를 방불케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그 속에서 위로받을 만큼만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나를 치료하고, 나를 숨쉬게 한다. '뿌리와 생명으로 자신의 장소와 연결되어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나또한 그렇게 되고 싶다. 이 세상의 어느 특정 장소와 연결되어 있다는 그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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