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쩌다 춘천

시월의숲 2017. 5. 14. 18:43



누군가 '어쩌다 춘천행'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말을 듣고 지금 우리 상황에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다 춘천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도 전혀 모르는 걷기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였다. 처음에 거길 가자고 했던 사람은 내 직장 상사였는데, 가야하는 날이 토요일인데다 28킬로를 걸어야 한다고 했고, 무엇보다(누구나 그렇듯이) 직장 상사와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기에 선뜻 간다고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 나도 따라가게 되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뭐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가벼운 배낭을 메고 춘천의 소양호를 따라 걸었다. 춘천까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를 초대했던 동호회 부회장이 간단한 걷기 요령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되내이며 결코 짧지 않은(처음엔 너무 무리하는게 아닌가 싶었던)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가기 전, 함께 간 직장 동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선선했고, 태양은 구름 속에 얌전히 있었으며, 바람은 적당히 불었고, 걷기 심심하지 않도록 소양호의 풍경은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걷다가 문득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발걸음이 멈춰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걷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며, 중간에 낙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주최측의 배려와 마지막에 급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인하여 결국 28킬로를 완주하지는 못하고 최종 19.4킬로를 걷긴 했지만, 우리는 그 누구보다 만족해서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는 서로 대견해 했으며(그래야 마땅했으며), 어떤 이는 이를 농담삼아 인간승리라고까지 표현했다. 문득 '걷는 일'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평소에 흔히 하는 걷기라는 행위가 어째서 이토록 특별해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어쩌다 춘천'에서 '걷기'를 했지만 적당한 온도와 바람, 소양호의 풍경이 없었다면 결코 완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가능하게 해준 건 함께 걸었던 동료들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들의 축제  (0) 2017.05.28
장미의 계절  (0) 2017.05.21
어떤 고독  (0) 2017.04.23
뿌리와 생명으로 자신의 장소와 연결되어 있는  (0) 2017.04.16
그저 벚나무 아래를 걸었을 뿐인데  (0) 2017.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