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별들의 축제

시월의숲 2017. 5. 28. 22:23

원래 인문학 콘서트를 보려고 하였으나 주최측의 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시작되었고, 그 전에 이미 우리들은 축제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약간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 보려했던 인문학 콘서트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축제장을 조금 더 둘러보고, 조용한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우리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화제가 끊어질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았고 마치 바톤을 이어나가는 계주경기처럼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오래 카페에 앉아 있게 되었다. 그 카페는 이전에도 몇 번 와본 적이 있어서 익숙했는데, 창 밖으로 커다란 저수지가 펼쳐져 있어서 탁 트인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꽤 오래동안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보면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다들 축제장을 돌아다니느라 지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우리들 중 몇은 집으로 돌아갔고, 몇은 다시 축제장으로 돌아가서 저녁에 하는 공연을 보기로 했다. 나는 뮤지컬 배우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는 말에 혹해서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우리들은 각자 집으로 가서 외투를 입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공연 시간에 늦었고, 결국 우리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한 말, '감사합니다'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화가 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공연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지르는 소리는 커다란 음향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공연을 더 볼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왔기 때문에 우리들은 공연장을 빠져나와 식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축제치고는 음식을 파는 곳이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다 팔려버려서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서 컵라면과 캔맥주를 사서 빈 자리에 앉았다. 마침 부추전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가 주문한 두 장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들은 특설무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부추전과 컵라면, 캔맥주를 먹었다. 다 먹은 후에는 천천히 걸어서 주차장으로 갔다. 축제에 몰린 많은 사람들로 행사장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조금 걸어야 했다. 밤이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잘못들어서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와야 했는데, 그때 누군가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별이다! 라고 외쳤다. 우리들은 마치 주문에 걸린 듯 일제히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하늘에는 정말로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 저거 북두칠성 아닌가? 누군가 말했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렇네, 북두칠성이네! 하며 탄성을 질렀다. 우리들은 별자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거는 카시오페아 아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저거는 뭐지? 하며 서로 대답하지 못하는 물음을 물으며 한동안 계속 별을 바라보았다. 마치 별을 처음 보는 사람들처럼. 그렇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때 마치 별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별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신기해했다. 하늘에 저렇게나 무수한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니! 내가 별을 본 적이 언제던가? 나는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고개가 아플 때까지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어쩌면 저 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다리 아프게 돌아다니면서 본 축제장의 풍경도, 카페에 앉아서 했던 많은 이야기들도 아닌, 우연히 올려다본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던 별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은 사람들의 축제가 아니라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의 축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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