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요조, 《아무튼, 떡볶이》, 위고, 2019.

시월의숲 2021. 1. 6. 21:47

나는 옛날 '미미네 떡볶이'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을 이제 영원히 먹을 수 없다. '분위기'말이다. 홀로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거나, 홀로 책방에서 시집을 고를 때, 혹은 홀로 술집에서 생맥주 혹은 싱글몰트 따위를 홀짝일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분위기' 하나를 같이 먹는다. 그 '분위기'를 먹으면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이런저런 생각이라는 것을 하거나 혹은 그 어떤 생각도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어찌 됐든 결국 더욱 자신다움으로 단단해진 채 거리로 나오게 된다.(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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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가 주는 향기를 맡는 일은 나에게 간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꽃나무는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서 향을 더 나눠주는 존재들이 아니다. 어떤 때에는 바로 곁을 지나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모든 것은 그 나무의 컨디션과, 그날의 바람과 온도, 그리고 하필 그 순간의 내 호흡이 맞아떨어지는 아주 찰나에 좌우된다. 길을 걷다가 꽃나무 향기를 맡는 것도 나에게는 큰 횡재인 것이다.(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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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안심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져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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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건물 지하의 오래된 가게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어떤 어른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랐던 음식을 다시 찾아 먹으며 자신을 닮은 자식을 품고 조용히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이미 그 과정을 지나 가족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작은 가게에서 얼마나 커다랗고 아름다운 것이 쑥쑥 뻗어나가고 있는지 김경숙 씨는 알고 있을까.(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