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윌리엄 버로스, 《정키》,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시월의숲 2020. 10. 18. 23:00

종종 들리는 질문이 있다. '왜 마약 중독자가 되는가?'

답은 '스스로 중독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이다. 하루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마약중독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중독되려면 하루 두 번씩 적어도 석 달은 마약을 써야 한다. 나는 처음 습관성 중독이 되기까지 거의 반년이 걸렸다. 그때에는 금단증세도 가벼웠다. 중독자가 되려면 1년 가까이 수백 방의 주사를 써야 한다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물론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다. '애당초 왜 마약을 시작했나? 왜 중독자가 될 만큼 오래 사용했나?' 다른 어디에도 강한 동기가 없으므로 마약 중독자가 된다. 마약이 당연히 이긴다. 나는 호기심에 시작했다. 돈이 있었고, 별생각 없이 주사를 맞으러 다닌 것뿐이다. 결국 중독됐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중독자들 대부분도 비슷했다. 마약을 시작한 이유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쓰다가 중독된다. 한 번도 중독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중독될 특별한 이유 없이도 중독될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중독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니 중독자가 되어 아픈 것이다.(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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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세포의 방정식이다. 이를 통해서 마약 사용자는 타당한 제반 사실들을 배운다. 나도 마약을 사용하면서 아주 많이 배웠다. 모르핀 용액 점안기로 삶을 측정하는 법도 배웠다. 금단증세의 고통스러운 박탈감도 겪었다. 마약에 목마른 세포들이 주삿바늘에서 꿀꺽꿀꺽 마약을 빨아들일 때 안도의 쾌감도 맛보았다. 쾌감은 모두 안도감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마약은 사용자에게 세포의 금욕도 가르치며, 나도 그 금욕을 배웠다. 나는 감방 가득한 중독자들이 금단증세 때문에 각자 비참한 상태로 말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감방의 중독자들은 불평하거나 움직여도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아무도 누구를 도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도 아무에게 열쇠도, 비밀도 줄 수 없다. 

나도 마약의 방정식을 배웠다. 술이나 대마초처럼 마약도 삶의 기쁨을 늘이는 수단이 아니다. 마약은 흥분제가 아니다. 삶의 방식이다.(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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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포기하면, 삶의 방식도 포기하게 된다. 나는 중독자들이 술에 빠져서 몇 년 안에 결국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해왔다. 한때 중독자였던 사람 사이에서는 자살이 흔한 일이다. 중독자가 자기 의지로 약을 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의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약이 주는 손실과 공포를 의식적으로 표로 만들어본들 그것이 약을 끊겠다는 생각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약을 끊겠다는 결심은 세포의 결심이며, 일단 약을 끊기로 결심하면, 이전에 약을 멀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약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약에서 돌아오면,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던 사람처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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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효과는 특별한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노화해 가고, 조심스러우며, 걱정 많고, 겁먹은 육신의 주장에서 순간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자유다. 어쩌면 나는 내가 마약과 대마초와 코카인에서 찾고 있었던 것을 야헤에서 찾을지도 모르겠다. 야헤가 마지막 약이 될지도 모른다.(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