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탕트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딜레타레로 '기쁘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기쁨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예술 애호가로 살면서 느낀 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도 모두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내가 의미를 둔 것만이 나에게 그 미적인 감흥을 허용한다. 명화도 명곡도, 일상의 작은 연필 하나까지도 그렇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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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은 단순히 '본다'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가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어떤 판정을 내리는 것은 쉽게 잊히는 특징이 있다. 그것보다 더 새롭고 대단한 자극을 받으면 그 이전의 기억이 무력해지는 것과 같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일방적 수용이라면, 예술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개입된 적극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기억이 더 강하고 확대된다. 신이 만든 자연 못지않게, 인간의 예술이 주는 위안이 더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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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변치 않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지켜야 할 경전이 아니다. 언제든 새로운 시도 앞에 감탄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술품 앞에선 최고라는 감탄사를 아껴야 한다. 최고란 자신이 보았던 범위 안에서의 위험한 판정이기 쉽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순위를 매길 수 없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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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 근거가 확장되는 재미를 아는 것이 심미안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비교의 즐거움은 단순히,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가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 여러 개를 겹쳐놓는 경험이다. 상대적인 장점, 상대적인 단점을 파악하는 일이다. 또 다른 게 뭔가 더 없나? 이런 걸 상상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왜?'라는 관점으로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일이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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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러 꼭 미술관에 가야 하는 걸까. 그곳에서 그림을 보면 뭐가 특별히 다른가. 물론 우리 일상 어느 곳에서나 미술과 관련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일상의 것들은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미술관에 가면 일단 거리를 두고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거리'가 확보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집중의 효과가 크다. 대상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모인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전시회 하나를 보고 나오면, 길가에 놓인 별거 아닌 조형물도 뭔가 특별해 보인다. 집중해서 관찰한 에너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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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는 사실 이유가 없다. 보고 나면 너무 좋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역설적으로 명작일수록 왜 좋은지 말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자꾸 적접 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명작은 기본적으로 긴 세월을 견딘 작품이다. 명작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졌고,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도 남아 있을 것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불멸성을 이미 갖췄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시간에 맞서 변하지 않는 대상과 마주할 때의 경험은 강렬하다. 뛰어난 예술품 앞에서는 누구든 겸손해진다.(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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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갖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시간의 질서에 강하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음악은 음을 시간의 질서를 통해 조화롭게 만드는 예술이다. 자연스럽고 듣기 좋은 조화를 만들기 위해 소리가 나오는 순서와 길고 짧은 음을 배열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간의 질서는 감상자가 오롯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된다. 음악은 창작자가 의도한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예술이다. 아무리 급해도 압축한 음악은 파악할 수가 없다. 비디오는 몇 배 빠른 속도로, 혹은 느린 속도로 재생해도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도 찬찬히 보아도 되고, 빠르게 보아도 된다. 사람마다 관람하는 속도가 다르다. 문학도 읽는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 하지만 소리는 압축되는 순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이 된다. 4분 50초 동안 들어야 하는 음악은 4분 50초를 지켜 들어야만 공감할 수 있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규정된 시간의 질서에 공감하는 일이다.(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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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특별한 점은 단연 그것이 '사라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음악은 연주되고 재생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진다. 현재만 있는 예술이다. 사라지는 아름다움이기에 더욱 강렬하다. 그 강렬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현장에서 듣는 것이다.(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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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궁극적으로 시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똑같은 건물도 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의 공간으로 바뀌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시간의 흐름이 바뀐다. 가구와 집기 등을 담아두는 공간의 틀이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는 매우 크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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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러 방법이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게 예술의 힘이다.(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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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찍을 것인지, 내용과 방향을 정해야 한다. 좋아하는 걸 찍으면 되지 않을까?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데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 제일 힘들다. 비교의 관점이 있어야 좋고 나쁨이 가려지게 되는데, 비교의 관점이 있으려면 갖고 있는 내용이 풍부해야 한다. 가진 게 별로 없으면 뭐가 좋은지 나쁜지도 알 수 없다. 그럴 때 쉽게 참고할 수 있는 게 과거의 지식이다. 앞서간 작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나름의 취향과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모든 예술가들의 첫 출발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후에 이것저것 직접 해보며 생각과 결과의 간극을 메워가는 수밖에 없다. 얼마나 '다르게'를 찾아가는 것이다.(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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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만큼 창의적 시도와 노력을 집약하는 분야는 없다. 예술은 구체적 용도가 없다. 용도를 지니는 순간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괴로움에 시달린다. 상품은 팔리지 않으면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거꾸로 예술품은 반드시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팔리지 않아도 실패라 하지 않는 게 예술의 불문율이다. 자유롭게 무슨 짓을 하든 용서되는 인간 세계의 유일한 일탈통로가 예술인 것이다. 그런 만큼 새로움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받는 게 예술이다. 비록 외면받는다고 해도 예술가의 작업은 도발적이어야 한다. 뻔한 것을 반복하는 일은 죄악이다. 뒤집고 흔들고 바꾸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지 모르는 새로움만이 희망이고 목표가 된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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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을 통해 디자인에 대해 갖게 된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디자인은 곧 '사물의 진화'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상의 의미화'라는 것이다.(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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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이 디자인 감각도 좋다. 공감 능력이 좋다는 건 그만큼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관심에 머물지 않고 다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조화로움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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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은 외압을 걷어낸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의미가 있다. 좋다는 건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를 빌리면 이렇다. 그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의미를 더해 감동이 넘치며,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인류의 스승이 말하는 '좋음'이란 어렵지 않다. 예술의 일상화란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먹는 끼니의 그릇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놓고, 들리는 음악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채우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좋으나, 그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선별의 기준을 갖게 되면, 그것이 곧 심미안이다.
아름다움을 파악하고 경험하게 되면, 스스로의 인식과 판단의 범위가 다음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 무용한 것이 유용한 가치로 바뀌는 행복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순환의 시간들을 갖게 되면, 삶이 지루할 틈도 괴로울 틈도 없다.(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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