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글은 결국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시월의숲 2021. 11. 4. 22:43

이런 류의 책들, 그러니까 소위 실용서들은 정말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면 거의 읽지 않았다. 그저 흥미 위주로 읽기에는 우선 전혀 흥미가 일지 않았고, 간혹 필요에 의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독서라기보다는 그저 공부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재미로 공부를 하기도 한다지만 내게 공부란 정말 각 잡고 앉아서 인내심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기에, 공부를 위한 독서는 당연하게도 취미로 하는 독서보다 고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심지어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책을 한 권쯤은 읽어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래전에 나도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였는지, '당신도 글을 쓸 수 있다'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쨌든 그 비슷한 제목의 책을 산 적이 있다(정확한 제목이 궁금해서 책장을 뒤져봤는데 책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본가에 있는 책장에 꽂혀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산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그 책을 십 년도 더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다. 아니, 사실 몇 페이지 읽기는 했는데, 그걸 읽었다고 말하는 건 그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고,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인지 궁금해서 구입했지만 도무지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쓰고 싶어 샀는데, 읽지를 못하다니.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책 자체가 너무나 도식적이고 고리타분했을 수도 있고, 글쓰기 책을 읽느니 소설을 한 권 더 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글쓰기 책을 읽기에는 내 인내심이 너무 부족했거나, 아직 어린 마음에 그냥 내 멋대로 쓰면 되는 거지, 라며 호기롭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글쓰기 관련 책은 읽어볼 생각조차 안 하고 살다가 이번 독서모임에서 강원국, 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이 선정되었을 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내 그런 편파적인 취향과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생각보다 재밌고 술술 읽히며 아주 실용적인, 그야말로 글쓰기의 팁을 집대성한 '바이블'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서술방식이 대화체로 되어 있어서 읽기에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데 있다. 서로 이야기하듯 주고받는 대화 속에 글쓰기에 대한 여러가지 방법론과 실용적인 조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이 책은 오디오로 녹음된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의 구성이 대화형으로 되어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 명의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글쓰기 강사인데, 다년간의 실무와 경험으로 내공이 아주 탄탄한 사람들이었다. 역시 좋은 강사들은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어려운 말은 쉽게, 쉬운 말은 더 쉽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써온 글쓰기와는 조금 다른 조언을 하고 있달까. 저자 중 한 명인 백승권은 이 책에서 글쓰기의 세계는 표현적 글쓰기와 소통적 글쓰기로 나뉘는데 표현적 글쓰기에서 소통적 글쓰기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했고, 강원국은 글은 결국 읽히기 위해서 쓰는 것이고 기왕 읽힐 바에는 잘 읽히고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글이 좋다고 했다. 물론 나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 '표현적인 글쓰기'를 써온 나로서는 구체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그에게 반응을 얻는, 소위 소통적 글쓰기가 더 자연스러우며 좋다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저자들도 표현적 글쓰기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받아 적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독자가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우선 생각하고, 자기를 표현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독자라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작가도 아닌데 무슨 독자가 있단 말인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부터는 그저 막연히 익명의 누군가가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를 상상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었다. 그저 나도 모르는 '누군가'만 있을 뿐.

 

강원국은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정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어떤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밀히 말해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실용적인 글쓰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일을 하면서 보고서를 쓰거나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글을 써야만 하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소통의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나'라는 우물에서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독자를 생각하고 독자의 눈높이에서 독자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글. 그런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독자 따위는 상관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글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쓴 글이 좋을 때도 있다. 그런 글은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문학적으로는 상당히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옛 거장들>처럼. 

 

이 책에는 글쓰기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것도 아주 쉬운 언어로 자상하게.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실제로 많이 써본다면 글쓰기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지 않을까. 표현적인 글쓰기든 소통의 글쓰기든 어쨌든 글쓰기의 기본 뼈대는 같을테니까. 그리고 어떤 글이든 많이 써본 사람에게 당할 자는 없을 테니까. 나는 우선 독자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소통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그동안 글쓰기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나를 표현하는 일이고, 그래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쓴 글이 나만의 우물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흘러서 냇물이 되고 강이 되어 결국 바다를 만날 수 있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또다른 기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은 그런 바다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옛 거장들>에 나오는 괴팍하고 인간 혐오로 가득한 주인공도 결국 인간을, 사랑을, 관심을 갈구하지 않는가. 그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 강원국, 백승권, 박사 저, 『강원국 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 2020. C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