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내 안의 내가 너무도 많아서

시월의숲 2021. 9. 6. 00:09

한창림은 전혀 생각해본 바 없었지만 사실, 그도 그의 아내도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다. 조울증 환자인 아내, 툭하면 기이한 수컷 냄새나 풍기는 그, 둘 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될 사람들이었고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사람들이었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 날 때부터 괴물로 운명 지어진 존재들이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나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처럼 사냥감이 되어 평생 쫓겨 다닐 괴물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괴물? 괴물의 정의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287~288쪽, 백민석, 『목화밭 엽기전』, 한겨레출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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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의 이 소설을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선뜻 읽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읽기도 전에 느껴지는 어떤 불온하고 불길한 정서가 나를 흠칫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름의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좀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시종일관 불쾌하고 독특한 불안감을 전해주었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교외의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대학강사 한창림과 과외교사 박태자 부부는 한 가지 기이한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납치해 스너프 필름을 찍고 그것을 펫숍에 넘기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 그런 잔혹한 행위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설정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물론 요즘같은 시절에 이런 엽기적인 행각은 별반 충격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도저히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믿기 힘든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엽기라는 말 자체가 이미 철 지난 단어처럼 느껴지지 않은가.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들, 그러니까 두 주인공들의 외면적인 일상은 너무나도 평온하며, 자연스럽다는 데 있었다. 그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과는 결이 다른 평범성이 아닌가. 

 

작가는 그런 괴물들을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조금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물론 현대에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사회 체계 바깥에 존재해 왔다. 하지만 어디 괴물이 바깥의 존재이기만 할까? 괴물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한창림과 박태자처럼 겉으로보기에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 속에도 있고,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내면 저 깊은 곳에도 자리하고 있다. 

 

무서운 것은, 때로 그런 괴물이 '나'라는 자아를 벗어나 날 뛸 때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괴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잘 통제를 하겠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때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불가항력의 괴물이 아니라, 그저 살인과 쾌락의 유희를 즐기는 괴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한창림이 자신의 일을 평소처럼 처리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한순간의 예상치 못한 감정의 발산으로 인해 자신의 괴물성이 서서히 탄로 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원래 괴물이던 한창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원래부터 괴물이었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순간적인 감정의 발산이 어쩌면 우리들을 괴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 도처에는 여러 괴물들이 존재한다. 다른 말로 '악'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괴물이. 나는 때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과 마주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무서워진다. 하지만 그런 나도 내 안의 여러 '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듬어 가는 수밖에. 나는 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우리, 괴물이 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