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렇게도 길다.
(44쪽,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중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젊은 날의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읽었기 때문일까. 갑자기 시가 읽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 서점에서 시집을 구입했다. 읽었던 시집을 다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어쩐지 소설보다 시를 등한시한 것 같은 마음에 시집을 더 구입하고 싶었다. 읽고 싶은 시집은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최승자의 시집을 더 구입하고 싶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랑>을 제외한 이후 세 권의 시집을 구입했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해도 무려 2010년에 나왔다니!)에 나온 <쓸쓸해서 머나먼>은 분명히 내가 읽고 책장에 꽂아 놓았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승자의 시집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 세 권, 류인서의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까지. 최근에 본 영화 <노매드랜드>의 OST도 함께 구입했다. 영화 속 음악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 시집은 뭐랄까,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한 환희와 절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나는 이 시들이 다른 시들을 읽게 싶고 만드는 매력까지 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참 특이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이 시집을 읽고 다른 시를 읽고 싶어서 급기야 시집을 구입하기까지 했으니,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상한 일은 파블로 네루다의 저 찬란하고도 멜랑콜리한 시집을 읽고나서 그의 시를 더 읽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네루다가 아닌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은 나도 설명하기 힘들다. 어쩌면 내게 파블로 네루다는 이 한 권의 시집으로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 그만큼 강렬한 일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집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제목 자체가 이미 시가 되어버렸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 시집 속에는 이 시집의 제목과 동명의 시는 나오지 않는다. 이 시집의 제목은 무척 단순하게도 시집 안에 들어 있는 스무 편의 사랑 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그대로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단순명료한 제목이 그 자체로서 굉장한 시적 울림을 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어려운 상징과 은유,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있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아름다운 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이고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일까. 왜 사랑의 노래, 절망의 시라고 하지 않는가. 왜 모두 시라고 하지 않고, 모두 노래라고 하지 않는가. 사랑은 시가 되고 절망은 노래가 되는 이 시집의 제목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이 시집과 나를 감쌌다.
어쩌면 파블로 네루다는 사랑이라는 환희와 절정의 순간은 '시'라는 무게고 누르고, 사랑의 상실, 즉 절망의 순간은 '노래'로 조금 가벼워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이 노래가 되고, 절망이 시가 된다면 그것은 너무나 극단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젊음의 특징이 극단을 오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네루다는 그러한 젊음의 양극을 보다 유연하게 조절할 줄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순간순간 절망이 되고, 절망에서 다시 사랑으로 나가갈 수도 있음을 그는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그래서 사랑은 '시'가 되고 절망은 '노래'가 된다. 그리고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그 자체로 시가 된다.
이번 가을에는 시집을 가까이 해야겠다. 그는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벌써 이 시집을 발표했다. 내게 열아홉의 나이라는 것이 있기나 했는지, 있었다면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최승자의 시집은 사랑보다는 절망에 더 가깝겠지만, 절망의 끝까지 가보면 무언가 보이는 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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