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김애란, 『바깥은 여름』 중 단편 <가리는 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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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들이 모래사장에 건져낸 불가사리처럼 또렷이 그 형체를 드러낸다. 나는 오래전 그것을 읽었으나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느낀다. 그 불가사리의 형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렇게 다시 그것을 읽는다. 불현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떠오른다. 처음 읽고 나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소설이다. 그 소설에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는 연인들이 나온다. 그들은 열렬히 서로를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잠시 만났다가 영원히 이별한다. 그들은 마치 당연한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소설 속 화자는 말한다.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혹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으로 삼아 회전하고 있는 것은 것일까?'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이라고 김애란의 소설 속 인물은 말한다. 안 만나는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라고. 하루키 소설 속 인물은 말한다. '우리는 멋진 여행의 동반자이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멀리서 보면 유성처럼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인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두 개의 위성이 그려 내는 궤도가 우연히 겹쳐질 때 우리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볼 수 있죠. 또는 마음을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잠깐, 다음 순간에는 다시 절대적인 고독의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완전히 연소되어 제로가 될 때까지 말이에요.'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우리들은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결국 헤어지고 마는 것이다. 김애란은 그 헤어짐을 '어떤 인간들'이라고 한정했지만, 하루키는 '죄인 같은 존재'인 인간 전체로 넓게 해석한다는 점이 다르달까. 김애란과 하루키는 그렇게 소설을 통해 헤어짐을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지. 나는 왜 이 문장들에 감응하는 걸까? 나는 왜 헤어짐과 관련된 문장들을 마치 내가 그런 헤어짐이라도 겪은 것처럼 쓸쓸해하고 급기야는 고독해지는 것만 같은가. 나는 정작 그런 헤어짐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화자와도 같은 심정이기 때문일까? 그 소설은 연인이었던 두 인물에 대해 화자가 이야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화자는 말 그대로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사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궤도를, 고독을 이야기한다. 아니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던가? 화자는 두 연인 중 한 명을 사랑했던가?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나는 하루키의 그 소설을 한 번 더 읽어야 할 듯하다. 어쨌든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 채로 지구의 인력을 단 하나의 연줄로 삼아 쉬지 않고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스푸트니크의 후예들을 생각했다. 고독한 금속 덩어리인 그들은 차단막이 없는 우주의 암흑 속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가 순간적으로 스치면서 영원히 헤어져 버린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약속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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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김애란의 저 문장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갑자기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생각났고,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글이 되어 버렸다. 이건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대한 못다 한 독후감일까? 어쨌든 결국 <어느푸른저녁>이 아니라 <흔해빠진독서>에 올리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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