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조지프 브로드스키, 《베네치아의 겨울빛》, 뮤진트리, 2020.

시월의숲 2023. 11. 25. 15:34

나는 그곳에서 내가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맞이하러 나와 주기를 기다렸다. 그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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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나의 계절이었다.(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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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당신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자유로운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이 그것들과 마주친 순간의 감정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자유 상태에 있는 원소들이 무궁무진하다. 그 순간 나는 차가운 밤공기로 그린 자화상 속으로 발을 들인 것 같았다.(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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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온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다.(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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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아무리 위중하다고 해도, 병만으로는 이 도시에서 지옥의 환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이 도시에서 악몽의 먹이가 되려면, 당신은 특수한 신경증이 있거나 그에 비견할 죄악을 거듭 지었거나 아니면 둘 다여야 한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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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유한함뿐이기 때문이다.(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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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만약 내가 내 제국을 벗어난다면, 뱀장어가 발트해를 빠져나간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베네치아를 방문해, 지나가는 보트들이 일으킨 파도가 내 창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아무 저택의 일층에 방을 하나 빌리고, 축축한 돌바닥에서 내 담뱃불이 꺼져가는 동안 비가悲歌 두 편을 쓰고, 기침도 하고 술도 마시고, 돈이 떨어지면 기차를 타는 대신 작은 브라우닝 한 자루를 사서 베네치아에서 자연사로 죽지 못하게 그 자리에서 내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것이라고.(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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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끝은 춥고, 축축하고, 흑백이었다. 그 도시가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 이 도시를 먼저 다녀간 어느 작가의 글을 인용하자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은 신의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장 2절)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모든 종이 울리고 있었다.(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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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표면은 먼지를 욕망한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먼지는 시간의 살이자 피다.(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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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는 빛이 유래한 영원의 애무를, 빛의 손길을 음미하며 빛 안에 머무른다. 물체 덕분에 우리는 빛이라는 무한함을 사유화할 수 있다.(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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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온 도시는 특히 밤이면 은은하게 불을 밝힌 저택이라는 악보대가 있고, 끊임없이 합창하는 파도와, 겨울 하늘의 별 하나가 부르는 가성까지 갖춘 거대한 오케스트라처럼 보인다. 물론 그 오케스타라가 만드는 음악은 오케스트라보다 더 거대하고, 어떤 손도 악보를 넘겨줄 수 없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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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따스했다. 해가 쨍하고 하늘은 파래서 어딜 보나 아름다웠다. 폰다멘테와 산 미켈레를 등진 채 병원의 벽을 부둥켜안고 왼쪽 어깨로 벽을 거의 쓸 듯하며 태양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순간,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고양이라고. 막 물고기 한 마리를 먹어치운 고양이. 그 순간 누가 나를 불렀다면 나는 '야옹'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절대적으로 동물적인 감각의 차원에서 행복했다.(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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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쓸모없는 데이터라 하더라도, 눈은 계속 정보를 모은다. 사실 쓸모없는 데이터일수록 초점은 더 날카로운 법이다. 질문은 '왜'이고 그 대답은 '아름다움은 항상 외면적이기 때문에'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예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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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를 향해 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현재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남으려는, 계속 머물려는, 이 도시와 하나가 되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것은 규칙에 반한다. 그 눈물은 과거의 것이자, 미래가 과거에 바친 공물이다. 아니면 더 작은 것으로부터 더 큰 것 즉, 사람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출한 결과물일 것이다. 똑같은 논리를 사랑에도 대입할 수 있다. 왜냐면 사람의 사랑도 사람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