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암실문고, 2023.

시월의숲 2024. 10. 1. 16:09

나는 살기 위해 타인들을 필요로 하므로, 나는 바보이므로, 나는 완전히 비뚤어진 자이므로, 어쨌든, 당신이 오직 명상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그 완전한 공허에 빠져들기 위해 명상 말고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명상은 결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명상은 그 자체만으로 목적이 될 수 있다. 나는 말없이, 공허에 대해 명상한다. 내 삶에 딴죽을 거는 건 글쓰기다.(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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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일에는 어떠한 행복도 없다. 행복? 나는 그보다 멍청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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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의 힘은 고독에 있다. 나는 폭우나 거센 돌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밤의 어둠이니까.(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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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현재 속에서만 산다. 그건 언제나 영원히 오늘이기 때문이고, 내일은 오늘이 될 것이며, 영원은 바로 이 순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29~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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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정 사회 계층에 속하지 않는 열외자다. 상류층은 나를 기이한 괴물로 여기고, 중류층은 내가 그들의 안정을 흔들까봐 걱정하며, 하류층은 내게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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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나는 여기 남겨졌으며 사람들의 세상에는 내 자리가 없다. 나는 절박하고 지친 상태로 글을 쓴다. 나로서 존재하면서 맞이하는 일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므로, 글쓰기라는 항상 새로운 작업이 없다면, 나는 날마다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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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 바깥에 있고, 나는 내 바깥에 있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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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 사실들 사이에 속삭임이 있다. 나를 경악시키는 건 그 속삭임이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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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개는 꼬리를 칠 줄 알고 사람은 배고픔을 느낄 줄 안다: 당신은 태어나고, 당신은 그저 안다. 그녀도 그런 식으로 많은 걸 알아 왔다. 그러니, 그녀가 어떤 식으로 죽어야 할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역할을 잘 아는 주인공처럼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시간에 다다른 사람은 빛나는 스타 배우가 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만인의 영광된 순간이다. 그때 당신은 찬송 합창 속에서 새된 비명 소리를 들을 것이다.(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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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예감 속에 담긴 진실이 더 좋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면 보다 무책임한 영역으로, 그저 약간의 예감들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지어내지 않았다. 그녀가 내 안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백치는 아니었지만 바보처럼 무능했고 사람을 쉽게 믿었다. 그래도 그녀는 먹을 걸 구걸해야 할 처지는 아니었다. 저 모든 빈민층 사람들은 그녀보다 더 가망이 없고 더 많이 굶는다. 오직 나만이 그녀를 사랑한다.(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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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글을 씀으로써 그저 하나의 우연한 존재가 되는 상황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쓰는 것, 그건 하나의 행위이고 행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힘들과 접촉하고, 나 자신을 통해 당신의 신을 발견한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모르겠다. 그래, 사실이다. 가끔 나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마치 내가 머나먼 은하계에 속한 존재인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나 자신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렵다.(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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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에 혼자이고 난 아무도 믿지 않아요, 모두가 거짓말을 해요, 때론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그러죠, 난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진실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실은 꼭 내가 혼자일 때만 찾아오는 거예요."(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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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든 것들 가운데 최악인 것을 원한다: 생명. 그러니 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주먹으로 배를 때려 그 느낌이 어떤지 확인해 보라. 생명이란 주먹으로 배를 맞는 것이니까.(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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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최선의 선택지는 이것이다: 죽지 않는 것. 왜냐하면 죽음은 충분치 못한 것이고, 따라서 너무도 많은 걸 필요로 하는 나를 완성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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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담배를 피워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맙소사, 방금 기억났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나도?!

지금이 딸기 철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그래.

(148~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