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에 충동에 사로잡혀 썼던 편지들을 떠올렸고, 그 편지들은 타이프라이터가 아니라 손으로 쓴 것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수치심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꼈다.
- 배수아, 「바우키스의 말」 중에서
이어서 그는 썼다.
'내가 쓴 편지들이 나를 다시 이끄는 것을 느꼈다. 그것들은 몸을 잃은 영혼과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우체부가 되어 내 편지를 다시 찾아오고 싶었다.'
나 역시, 오래전에 충동에 사로잡혀 썼던 편지들을 떠올렸고,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수치심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나는 설사 우체부가 된다 하여도 그 편지를 찾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 편지는 부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전해 준 편지였으므로. 나 스스로가 이미 우체부였으므로(하지만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게서 나온 말은 내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고, 나는 기억을 상실한 말과 다름없게 될 것'임을, 한 번 몸을 잃은 영혼은 어쩌면 영원히 그 몸을 찾지 못하고 떠돌게 될 것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으므로. 그 대가로 기억나지 않는 기억의 기억으로 깊은 수치심과 그리움을 뼛속까지 느끼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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