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년이 훌쩍 넘게 한 가지 일로 밥벌이를 해왔지만, 요즘 들어 내가 하는 일이 내게 맞는가 하는 자괴감이 자꾸만 든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지금껏 일에 나를 구겨 넣고 있었다는 걸, 그게 적응하는 중이라고 자신을 세뇌하면서. 적응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야만 했을까? 그렇다면 지금껏 내가 해온 것은 무엇이었나? 너무 늦은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 깨달음인가? 어느 날, 이런 내 고민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더니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많이 컸네. 이건 내가 많이 컸기 때문에 하는 배부른 소리일 뿐일까? 하지만 나는 안다. 진정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리란 걸. 그러니 그때까지 나는, 지금껏 해왔듯 일에 나를 구겨 넣고 있으리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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