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고리

그것이 왜 그토록 특별한 일이 되는 것일까?

시월의숲 2025. 12. 7. 21:43

 
 
펜션과 글램핑 중에 고르라고 했다. 글램핑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어쩐지 더 성가실 것 같아 그냥 펜션을 골랐다(물론 캠핑보다 글램핑이 편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결과는 총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글램핑을 골랐고 나 혼자만 펜션을 골랐다. 결과가 그러했으므로 나는 군말 없이 글램핑을 해야 했다. 속으로는 연신 귀찮다, 가기 싫다를 연발하면서도 약속은 약속이므로(더구나 내가 모임의 총무인 관계로) 마음을 다잡고 하루를 밖에서 잘 짐을 챙겼다.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 그렇듯, 가기 전까지는 약속이 취소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된다. 그런 모종의 변화가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어쨌든 나는 그것을 해야 하고, 하고 있으므로, 적어도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보고, 먹고, 느끼고, 즐기자는 주의로 변하는 것이다. 포기가 빠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모토에 나름 충실하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날 눈이 오기도 했고, 날씨가 많이 추워질 거라는 일기예보를 들었던 탓인지, 추울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많이 춥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간단한 술과 안주거리를 사서 글램핑장으로 왔다. 고기를 구워 먹는 대신 그냥 불만 피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냥 '불멍'만 하기로 한 것이다. 마른 장작과 종이박스를 넣어 불을 피웠다. 생각보다 빨리 나무에 불이 붙어서 다들 어리둥절했다. 나무가 잘 말랐나 봐. 우리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불을 바라보는 것. 타는 것을 보는 행위. 그것이 왜 그토록 특별한 일이 되는 것일까? 무엇이 그것을,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들은 모두 말없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타는 냄새와, 날름거리는 불의 혓바닥, 타닥타닥 튀는 불꽃의 춤을 그저 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불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쉬워 남은 장작을 연신 집어넣었다. 그러면 다시 활활 타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너울거리던 불은 사라지고 한 줌의 재만 남는다. 타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화려한 불꽃의 향연을 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한 순간 타오르는 불꽃은 흔히 인생의 한 시기에 비유되곤 한다. 가장 열정적이고 눈부신 생의 한 때. 우리 모두는 그것을 가질 것이고, 이미 그 속에 있거나, 한 때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 전체가 그런 불꽃의 한 때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환히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알 수 없는 침묵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은 불꽃 속에서 우리들 자신을 보는 것이다. 만물이 상생하는 봄날, 하염없이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보듯이. 아무래도 이런 생각은 요즘 읽고 있는 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책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해 본 글램핑은 캠핑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캠핑보다 덜 힘들면서도 펜션보다는 캠핑적(?)인 느낌. 어쨌거나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을 보다 특별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꽤 유용(?)한 듯 보인다. 사람들이 왜 그렇듯 캠핑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잠시일지라도 일상에서 오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이다.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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