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를 보았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로, 그가 만든 《28년 후》를 보았다. 1편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좀비물이란 그런 거니까. '어차피'라는 말에서 풍기는, 단순이 자극적인 클리셰로 뒤범벅된, 장르물의 익숙한 쾌감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의 의미와 소용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차피'라고 생각했던 좀비물이 이 영화에서는 좀 다르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좀비라는 장르물의 장점은 따르되 한 발 더 나아가 죽음과 삶에 대해서 성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와 자발적인 죽음, 좀비가 낳은 아이,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인식 등 좀비라는 소재로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자칫 가볍게 소비될 수 있는 휴머니즘과 신파를 넘어 나에게 꽤 묵직한 주제로 다가왔다.
또한 이 영화는 열두 살의 주인공(스파이크)이 겪는 성장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가 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비교적 안전한 삶을 살아가던 홀리 아일랜드에서 벗어나 좀비들이 우글대는 거친 땅으로 나아가는 무모함에 개탄을 금치 못했으나(아픈 어머니와 자신을 좀비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고 진정 믿은 것일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무기력하게 어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죽음에의 격렬한 저항이 결국 그를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아가게 한다. 죽음을 받아 든 그는 당연하게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간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그 일련의 여정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좀비물이 킬링타임용의 단순한 오락물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데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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