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5

이토록 평범함 미래라니

똑같은 투덜거림을 하기는 정말 싫었다. 하지만 나는 또 매번 하던 투덜거림으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글을 쓰기도 전에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과, '할 것 같다'라는 모호한 말을 쓰는 것조차 너무나도 싫지만. 싫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글쓰기라는 것도 있는 거겠지 세상엔. 어쨌거나 김연수의 비교적 최근작인 『이토록 평범함 미래』를 읽었다. 사실 읽은 지는 꽤 되었다. 늘 그랬듯 지금의 나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느낌만이 미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느낌이란, 그의 소설이 으레 그러하듯 절망적이지만 결코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긍정적이고 따뜻한 종류의 것이었다. 오랜만에 나온 이번 소설집은 이전보다 화려하고 재기 발랄하지는 않지만 한층 깊어진 느낌이었다. 좀 나..

흔해빠진독서 2023.10.18

김연수,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우주의 모든 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순간은 단 한 번뿐이에요. 태어나서 단 한번. 우리가 죽을 때. 그렇게.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것이죠. 영원히 빛으로 죽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아빠?(42쪽) * 스스로, 모든 건 스스로! 외부의 힘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래서 저절로 모든 일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저 믿기만 하면 돼.(91쪽) * 그건 이 현실의 표면이 살짝 찢겨나간 틈에서 쏟아지는 빛이었지. 이 현실, 고차원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런 깊이가 없는 3차원의 세계. 마치 종이로 만든 것과 같은. 이런 세계에서는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