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자음과모음, 2012.

시월의숲 2013. 1. 20. 16:44

 

 


단지 그것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고 나니 문득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생각났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모모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하는 말, '너를 낳아준 사람이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너뿐'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라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김연수의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등장하는 주인공 카밀라 포트만이 그 소설을 읽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물론 모모와 카밀라는 처한 상황이 다르긴 하다. 모모는 자신의 어머니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반면 카밀라는 동백꽃이 핀 벽돌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열일곱 살의 어머니 사진만을 간직한 채,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자신을 머나먼 타국에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모모와 카밀라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들이 지금 이곳에 흘러왔다는 사실만 같을 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혹은 어떻게 나의 정체를 규정지을 것인가에 대한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모모는 모모의 방식대로, 카밀라는 카밀라의 방식대로 자신의 뿌리를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끝나고도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점만은 두 소설 모두 같았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기 앞의 생>까지 들먹이는 건 어쩌면 맞지 않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과 같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카밀라는 모모가 깨달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증거가 자신뿐이라는 사실에 감동을 할 만큼 단단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아직 더 알아야만 했고, 더 깨져야만 했으며, 그래서 더 피 흘려야만 했다. 이미 추악할 대로 추악한 현실을 깨달은 모모와는 달리 그녀에게 현실이란 알 수 없는 과거 때문에 끊임없이 간섭받고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과거를 내버려둔 채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갈 여력이 그녀에겐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어머니가 누구였고, 어떤 사람이었으며, 자신이 왜 머나먼 바다를 건너와 낯선 이방인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녀는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자신의 양어머니인 앤이 죽고 난 뒤, 자신에게 남겨진 여섯 상자 분량의 짐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결국 '너무 사소한 기억들'이라는 책까지 내게 된 것이리라. 여섯 상자의 짐에 들어있던 사진 한 장이 그녀를 사진 속의 그 장소로 인도했고, 그녀는 한국의 진남이란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게 된 진실이란 그녀의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사실과 그것을 둘러싼 여러 사람의 엇갈린 진술과 그 모든 것들의 원인과 배경이 되는 시대적 비극이었다. 어머니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인지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 앞에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1부는 카밀라의 시선으로, 2부는 카밀라의 엄마, 지은의 시선으로, 3부는 카밀라와 지은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으로, 4부는 모든 비밀의 근원이 되었던 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서술된다. 이런 시선(화자)의 이동은 아마도 소설을 좀 더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작가가 말한 우리 사이에 놓인 심연과 그것을 건너가려는 날개, 즉 희망은 날개 달린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 말이다. 하지만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소설 속 카밀라의 엄마, 지은의 친구였던 유진은 말한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오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진 고통과 슬픔의 기억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빛바램과 손때와 상처와 잘못 그은 선 같은 것만 보여줄 뿐인 물건들'을 작가는 그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어쩌면 작가는 카밀라 포트만, 곧 정희재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그 모든 비극적인 역사와 개인적인 고통과 폭력적인 풍문에도 감히 어떤 '날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그런 생각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물끄러미 책 표지를 바라본다. 표지 속 양 갈래 머리의 소녀는 이미 내가 바라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 하다. 오래 전부터 누군가 그렇게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의 앞에는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겠지. 그 바다의 이름은 심연, 그녀는 아마도 심연을 건너가는 눈부시게 하얀 새의 날개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차가운 땅에서도,

그리고 가장 낯선 바다에서도 나는 들었네.

그러나 최악의 처지일 때도, 단 한 번도,

그 새는 내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