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녀석 집에 가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았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과는 달리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올드보이'와 대조적이었죠.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이고, 둘다 복수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두 영화는 상당히 다른 복수의 느낌을 전해줍니다.
우선 색깔로 표현하자면 '올드보이'는 붉은 색, '복수는 나의 것'은 푸른 색의 영화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붉은 색은 불의 느낌을, 푸른 색은 물의 느낌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두 영화의 영상을 보아도 그러한 느낌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주된 복수의 장소가 바로 냇가, 즉, 물에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붉은 색과 푸른 색, 불과 물. 즉 '올드보이'에 나오는 복수는 터질듯 격렬한 감정의 과잉 상태의 영화, 한 마디로 '강렬'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영화이지만 '복수는 나의 것'은 '과잉'과 '강렬'이라기 보다는 '절제'와 '냉정'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오대수의 분노는 터질듯한 화산 같지만 류(신하균)의 분노는 서릿발 같이 차가운 얼음 같습니다.
강렬과 냉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두 영화는 극중 주인공의 대사의 양을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오대수는 말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고 영화의 말미에도 과장된 연기와 많은 대사를 토해냅니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아예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류 뿐만 아니라 그 영화에 나오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복수에 대해서도 두 영화는 차이가 납니다. '올드보이'에서의 복수는 오대수와 이우진 간의 복수, 즉 서로의 서로에 대한 복수이지만,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복수는 신하균과 송광호, 두 사람간의 복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주된 복수의 무게는 그들 둘에게 있지만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의 복수가 한데 얽히고 섥혀 있습니다. 즉 저마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두 영화 모두 잔혹한 복수극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복수는 결국 복수를 낳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생각이 나더군요. 그들이 복수를 이루었다고 해서 결국 얻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서 부터 그것이 진정 복수였을까, 복수란 상대방에 대한 지독한 증오에서 나오는 것일텐데 그 지독한 증오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혹시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하는 지독히도 진부한 생각들... 뭐,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두서 없이 솟아오르다 가라앉곤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라는 테마의 3부작 영화중 마지막 영화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영애가 주인공이라고 하던데,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의 복수는 과연 어떤 빛깔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땐 세 영화를 비교해 볼 수 있겠군요.
'봄날은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그다드 카페, Calling you (0) | 2005.03.20 |
---|---|
꽃섬 (0) | 2005.03.20 |
인간의 특별함에 대한 욕망(영화 '젠틀맨리그'를 보고) (0) | 2005.03.17 |
인간이 인간인 이유-인간이라는 이름의 동물에 대해...(영화 '28일후' 를 보고) (0) | 2005.03.17 |
펀치 드렁크 러브 (0) | 2005.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