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꽃섬

시월의숲 2005. 3. 20. 15:01
여기 세 여인이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변기로 내려버린 열일곱살짜리의 여자아이.

오로지 딸의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늙은 노인과의 정사를 하다 복상사시킨 여인.

혀에 종양이 생겨 뿌리까지 도려내야하는 상황에 처한 오페라 가수.

모두들 삶에 치명적인 상처를 지닌 혹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들.

그들은 우연히 남해에 가는 버스를 타게되고,

우연처럼, 운명처럼 모든 상처와 아픔을 잊게 해준다는 꽃섬으로 가게 됩니다.

상처를 안고 있는 그녀들이 가야할 곳은 처음부터 그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들은 꽃섬으로 가는 여정에 여러 인간군상들을 만나게 되고(공교롭게도 모두다 남자들입니다)

꽃섬에 도착해서는 환상과 현실이 결합된 그녀들만의 의식을 치룹니다.

영화에 쓰인 상징들과 여러 낯선 영상표현들이 조금 난해하게 느껴졌지만,

왠일인지 두 시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녀들의 삶은 꽃섬을 찾아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처와 아픔을 잊게 해주는 꽃섬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그들을 살게 해주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삶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깨달음을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꼭 한번,

내가 상처와 아픔으로 견딜 수 없을 때,

그 꽃섬에 꼭 가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