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나의힘

달맞이꽃 - 이정록

시월의숲 2005. 5. 22. 10:38

달맞이꽃

 

 

- 이정록

 

 

 

마루에 앉아 알 껍질을 벗긴다

노른자가 한가운데 있질 않다

삶기 전까지 끊임없이 꿈틀거린 까닭이다

 

물이 끓어오르자

껍질 가까이로 목숨을 밀어붙인

보이지 않는 발가락과 날갯죽지

그 힘줄과 핏빛 눈망울과 미주알을 생각한다

 

그 옛날 어미의 뱃속

또는 훨씬 이전의 꿈틀거림이 파도처럼 이어지며,

병아리는 알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참을 헛다리짚는 것이다

 

축문과 지방을 쓰고

마루에 앉아서 계란 껍질을 벗기다가

중심에서 멀리 나온 보름달을 만난다

 

발을 디디려

하얀 발톱을 들이미는 달빛

그 비척거리는 헛발을

달맞이꽃이 받쳐들자, 식은땀인 듯

밤안개가 깔린다

 

 

 

*********

 

계란과 보름달, 달맞이꽃...

그 모든 것이 다르고 또 같다

그러고보면 세상에 모든 존재란

제 홀로인 것은 없나보다

오로지 사람만이 혼자임을 느끼고

슬퍼하고 괴로워할뿐...

이미 죽어버린 알에서 병아리를 생각하고,

보름달을 떠받히고 있는 달맞이꽃을 생각하는

시인의 눈. 그 떨리는 교감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나약한 나를 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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