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비디오를 한 편 봤습니다. 제목은 <쏘우>였고 장르는 스릴러였어요. 처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부터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항상 한발짝 늦게 보는게 어쩔 수 없는 내 습관이려니 생각하면서.(직접적으로 영화의 내용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신다면 안읽으시는게 좋을듯... 반전이 있는 영화는 완전 백지 상태에서 보는 게 좋잖아요...^^)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자신이 지저분하고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고, 한쪽 발은 보기에도 무거운 쇠사슬로 묶여 있으며, 그런 자신 앞에 총으로 자살한 사람의 시체가 놓여 있고, 그 건너편에는 자신과 똑 같은 처지의 낯선 사람이 있다면? 영화는 처음 부터 그런 황당한 상황에 빠져 있는 두 명의 사람(고든과 아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두 사람 모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왜 그런 곳에 그렇게 갇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발견되는 단서들. 범인은 고든에게 8시간 안에 아담을 죽이지 못하면 그의 아내와 딸을 죽일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범인은 그들을 묶어 놓고 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을 시작합니다.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일을 꾸민 것인지 이제부터 범인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같이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아, 시간은 자꾸 가는데... 약간 진부한 감도 있습니다만, 그 자체로서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이 영화는 중반까지 범인이 누굴까 머리를 굴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중반이 넘어가면 범인일거라 생각되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그 사람이 정말 범인일까 반신반의 하는 사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뒷통수를 칩니다. 제목처럼 범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saw) 있었더군요...
영화를 보고나서 맨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왜 범인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였어요. 왜 그랬을까. 미리 영화를 본 어떤 친구가 자신은 처음에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고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감독이 쳐 놓은 덫에 완전히 걸렸다고 해야하나...ㅜㅠ 뭐, 어쨌건 모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꽤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이 영화가 제작비에 비해 엄청난 흥행을 했다고 하던데, 그건 아마도 영리한 시나리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정말 제작비는 적게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거든요. 영화의 주요 무대가 바로 두 주인공들이 갇혀있는 밀폐된 지하실이 아닙니까? 머리만 잘 쓰면 하나의 급박한 상황을 가지고서도 괜찮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음을 있음을 증명한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돈만 많이 들인다고 좋은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
배우들(극중 형사로 나오는 흑인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배우들이더군요... 그 흑인 배우의 이름은 생각이 안나네요.ㅜㅠ)은 생각보다 그리 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특히 서서히 광기에 휩싸여 급기야는 자신의 발목을 자르게 되는 고든(제일 입체적이어야 할 캐릭터)의 심리가 절절히 와닿지 않고 그저 표피적으로 다가왔거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혼자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불끄고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는 여름를 배웅하고, 오는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너무 궁색한 방법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