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오픈 유어 아이즈

시월의숲 2005. 10. 22. 12:19

꽤 오래전에 나온 영화이지 싶다. 이 영화가 처음 나올 때부터 무척이나 보고 싶었었는데, 이제서야 보게 되다니. 어쩌면 감독인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최근작인 <디 아더스>를 무척이나 인상깊게 보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영화는 한 남자가 잠에서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자의 이름은 세자르. 죽은 부모의 레스토랑을 물려받아 경영하는 부자이면서, 한 여자와 두 번 이상 잠자리를 하지 않는 바람둥이인 그. 어느날 자신의 친구가 데려온 소피아(페널로페 크루즈)에게 호감을 느낀 그는 그녀에게 접근하지만, 이전에 만났던 누리아라는 여자가 방해를 한다. 누리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던 그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그녀의 차를 타게 되고 그녀는 곧장 낭떨어지로 질주한다. 여자는 죽고, 살아남은 그에게 남은 것은 흉측한 얼굴뿐. 그는 절망한다. 과연 그의 선택은?

 

다시 영화의 초반부로 돌아가서, 그는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정신과 의사가 그에게 왜 살인을 했냐고 다그친다. 그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소피아를 왜 죽였냐고. 그는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의사들이 준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을 쓴 그의 입모양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죽인 건 소피아가 아니라 누리아라고 말한다. 누리아는 사고가 났을 때 죽지 않았던가? 그런 그녀를 죽였다니. 그는 과연 미친 것일까.

 

과거와 현재, 거짓과 진실, 꿈과 현실이 실타래처럼 엉킨 세계. 그런 세계에서 눈을 떠야만 한다면 어느 지점에서 눈을 떠야 할까. 환멸만이 가득한 현실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꿈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특히나 세자르처럼 현실에서의 삶이 그의 얼굴처럼 끔찍한 것이 되어 버렸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래도 현실의 삶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살아낼 수 있을까. 영화는 아마도 그러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이 괴물처럼 변한 세자르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자르처럼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우리가 가진 가면은 세자르처럼 결코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우리는 수십개의 가면을 만들어 쓸 수 있다. 그런데 그 가면들은 모두 진실인가? 실제로는 세자르처럼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가면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글쎄,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실되어야 하는지. 다만 그런 인간의 속성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질 뿐.

 

하지만 살아있는 한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눈을 뜨라는 말은 아마도 그렇듯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진정 자신이 처한 현실, 진실에 눈을 뜨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을 찾는 과정은 영화에서처럼 무척이나 혼란스러울 것이고 살인을 저질러야 할 만큼 급박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더욱 힘든 것은 그렇게 시행착오 끝에 당도한 현실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믿는 수 밖에 없다. 걱정은 거기까지 당도한 다음에 해도 될 것이다.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눈을 뜨라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므로. 마지막에 세자르가 진실을 위해 고층빌딩에서 떨어졌듯 우리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언제까지 악몽에만 빠져 있을 것인가. 눈을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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