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형사

시월의숲 2006. 1. 1. 17:54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를 보았다.

 

그의 전작이자 대중적으로도 흥행한 <인정사정 볼것없다>는 아직 보질 못했고, 오래전에 그의 <첫사랑>이란 영화를 보았었다. 물론 그 영화가 이명세 감독의 영화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첫사랑의 감정을 가진 여대생의 심리를 그린 영화였는데, 김혜수의 풋풋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김혜수도 그렇지만 내가 그 영화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름 아닌 그 환상적인 영상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환상적이라고 해서 무척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첫사랑의 심정을 주인공의 환상적인 시점으로 처리했다고 해야하나... 암튼 그 심리를 그리는 방식이 무척이나 판타지적이었다. 물론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그런데 그  단순성은 <형사>에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원과 강동원이 주연한 <형사>는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다. 그 영화에 대해 떠도는 말들이 모두 혹평 일색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또한 내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지 않았기 때문도 아닌 것 같다. 감독이 추구하는 세계에서 줄거리나 이야기는 별 중요하지 않은듯 보이는데,  굳이 이야기의 결함을 두고 이야기 해 봤자 소용없는 짓이 될 테니까. 참 이상한 일은 요즘처럼 이미지에 대한 주가가 높은 시대에 이미지에 치중했다고 해서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뭐 영화에 대한 각자의 주관과 판단능력이 있으므로 내가 뭐라할 것은 아니지만 이미지에 치중한 영화라면 그냥 그렇게 봐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물론 그 둘이 조화롭게 겹합된다면 두말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어쨌거나 아무 생각없이 본 <형사>는 재미있었다. 하지원의 털털한 연기도 좋았고 안성기는 역시 믿음직스러운 배우였다. 그리고 강동원. <형사>는 그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감독은 그를 멋있게 보이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긴머리를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그에게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감독은 아마도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묵직한 스토리보다 한 순간의 장면, 이미지 등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어떤 책을 감명깊게 읽었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 줄거리는 거의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종국에 가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어쩌면 그 책이 풍기는 분위기나 이미지 뿐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듯 강한 이미지가 남는 것은 그 영상의 특이함이나 화려함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감동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형사>를 이렇듯 비주얼적인 면에 치중해서 보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것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건진 몇몇장면처럼 그렇게 인상깊은 장면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극중에서 남순과 슬픈눈의 좁은 골목에서의 대결씬이 최고라고들 하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파워가 좀 약한 느낌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았다. 비주얼에 신경쓴 흔적이 많이 보이는 것도 좋았고.

 

글을 써놓고 보니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도 헤깔린다. 음... 그래, 결론은 이거다.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