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후회하지 않아>를 보았다.
그냥 사랑 이야기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엔 조금은 특별한 남자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지 않는 떳떳한 정체성을 가진 감독의 영화라서 그럴까, 이 영화 또한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도대체 남자간의 사랑이라고 해서 뭐가 다른가? 라고 감독이 직접 말하고 있는 듯이. 수민(이영훈)이 여자라면 그대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되었을텐데, 아마 그랬다면 통속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구태의연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 통속의 여주인공이 남성으로 대치되었을 때 뿜어져나오는 강렬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에너지니까.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건 그들의 사랑이 비극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민의 궁핍한 생활이 내 가슴에 더 와 닿았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삶, 발버둥쳐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렁 속, 그래도 그 속에서 한가닥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 그가 재민을 자꾸 뿌리쳤던 것도 이해할 만 하다. 영화 속에서 수민이 그러지 않는가. 너는 부자라서 빠져나갈 곳이 많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고. 술집에서 돈을 버는 일이야 관두면 그만이지만 사랑에 빠지면? 이미 비극을 예감할 수 있는 사랑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때도 일을 그만 두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을 그만둘 수 있을 것인가.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모두 머리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정말 '골'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사실 남녀간의 사랑이나 남자간의 사랑이나 그 사랑의 본질은 똑같은 것일 게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이란 날아갈 듯 기쁜 것이기도 하고, 죽을 만큼 절망적인 것이기도 하고, 때론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슬픈 것이기도 하다고.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비록 그 말이 너를 사랑한다는 말처럼 흔해빠지고 훅, 불면 날아가 버릴 먼지처럼 가벼운 말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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