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피아니스트

시월의숲 2006. 10. 4. 21:55

사실 오래전에 이 영화의 원작인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어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100페이지 남짓 읽었을까,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말았다. 노벨상을 탄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물론 그녀의 작품은 노벨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들이 많긴 했지만) 한마디로 '난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그때 조금만 끈기를 가지고 다 읽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하나의 유니크한 피아노 선율처럼 느껴졌으니.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기까지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리카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이자 대학교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간의 성장발달 어느 한 단계에서 멈춰버린, 혹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인간인 것 같았다. 다른 건 문제가 없는데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방식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변태적'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낸다든가 포르노 샾에 들어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휴지를 주워다 냄새를 맡는 등... 이런 행위들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행동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적극적으로 그녀의 비정상적 행위들에 대해 규명하려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물론 그녀에게 강박적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나오긴 하지만). 그녀가 이상한 것인지, 내가 이상한 것인지?

 

그렇듯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발터 클레메라는 훤칠한 청년이 다가오면서 그 세계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에리카가 클레메에게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나도 원해' 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공유하기엔 그 사랑의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러한 만남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폭력적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라니. 클레메에게 있어서는 에리카가 폭력적이었겠지만 내겐 에리카가 당한 행위들이 더욱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에리카의 고통이, 그녀의 이해 불가능한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더 아프게 다가온 이유는 아마도 그녀에게서 단절되고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습과도 얼핏 닮았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영화를 보고나서도 한동안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불쾌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픈 느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에리카가 한없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찌를 수 밖에 없는 그 사랑의 어긋남. 그 소통부재의 사랑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가지 분명한 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