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간다

영화야 게임이야? - 사일런트 힐

시월의숲 2006. 11. 14. 21:08

 이 영화는 순전히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원작이 게임이라는 것과, 그 게임이 어떤 것이고, 거기서 묘사된 사일런트 힐의 분위기가 어떻다는 등의 정보없이 말이다. 순전히 '사일런트 힐'이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만 가지고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이 게임일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고 나서 확인해보니 굉장히 유명한 게임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자신의 태생(?)이 게임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좋은 전략이었을까?

 

인터넷에 올라온 리뷰들을 대충 훑어보니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린 영화라는 의견이 조금 우세한 듯 보인다. 그건 맞는 말인 것 같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것이 어떻게 잘 표현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지만, 단순히 영화의 비주얼만 따진다면 특유의 그로테스크하고 사악한 분위기가 잘 살아난 감이 있다. 하지만 이런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게임을 구경하고 있는지 영화를 보고 있는지 헤깔렸다면 이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게임은 게임 고유의 매력이 있고, 영화는 영화적 매력이 있다. 그 둘은 분명히 다른 성질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도중에 계속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영화로서의 스릴이 떨어진다는 증거가 아닐런지? 그것도 자신이 직접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게임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격이랄까. 영화를 보면서 특히 맥이 풀렸던 이유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단서들을 볼 때였다. 아무리 사일런트 힐이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묘사되었다고 해도 그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물론 그것이 진짜 게임이라면 때론 옆에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으나, 영화는 다르다. 영화는 사람이 직접 손과 머리를 써서 하는 게임과는 달리 가만히 앉아서 관람하는 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과는 다른 영화만이 가질 수 있고 표현해 낼 수 있는 스릴이랄까 공포, 뭐 그런 것들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같은 스릴이라도 좀 더 극적이고 유려하게 말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나빴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어쨌거나 뿌연 재가 내리는 사일런트 힐의 묘사는 맘에 들었으니까. 특히 사이렌이 울린 뒤 지옥처럼 변하는 사일런트 힐의 칙칙한 건물들과 기괴한 좀비들 그리고 악마의 묘사는 충분히 혐오스럽고 위협적이었다. 그에 반해 그 꼬마 여자아이는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게임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게임에서 '사일런트 힐'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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